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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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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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2월호>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왕국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셨는데(마 9:35),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까지 가르치시는 일에 전념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이후에도 가르치셨고(행 1:3) 승천하신 이후에도 성령 하나님을 통해 계속 가르치고 계신다(요 14:26).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의 주된 사역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초대 교회에는 여러 명의 교사들이 있었고(행 13:1) 교회의 주된 사역 역시 가르치는 일이었다.

성경을 배우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하는(딤후 2:15)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은혜 안에서 자라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게 된 결과들 중에 하나는 "잘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구원받은 죄인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순종하는 제자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일 년 내내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니 안티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더라』(행 11:26). 특히 말씀의 사역에 전념한(행 6:4)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가르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치되 모든 담대함으로 하였으니 아무도 그를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둔 시점에서의 마지막 권면 역시 계속 배워서 자라 가라는 권면이다(벧후 3:18).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요 6:29).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고, 그분의 은혜의 말씀과 예언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하는 것인데, 이 일은 성경 교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을 때, 빌립이 다가와서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느뇨?』(행 8:30)라고 묻자, 『나를 지도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행 8:31)라고 말했다. 그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빌립은 그 이사야서를 시작으로 성경을 가르쳐서 그 내시가 구원받게 했다. 가르쳐 주는 빌립이 있었기에 내시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아무도 듣고 깨달을 수 없는 법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지역 교회는(행 2:42) 복음 전도자, 목사와 교사의 가르침으로 계속해서 굳게 세워져 나간다(엡 4:11). "가르치는 일"은 가르치는 은사를 받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교사에게만 국한되는 사역이 아니며, "개인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구령자"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설득시켜서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리하면 내가 범법자들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리이다』(시 51:13).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된 어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 아그립파 왕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설득되어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했지만(행 26:28) 결국 믿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다.

누군가를 주님께 인도하는 사람 역시 가르치는 사람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녀의 성읍 사람들에게 『와서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을 나에게 말한 그 사람을 보라.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닌가?』(요 4:29)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주님께 인도했다(요 4:30,39-42). 안드레는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 1:41)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했다.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는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유대인인 아폴로를 형제들에게 데려가서 "하나님의 도"를 더욱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행 18:26). 이상 모든 내용이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도 가르침을 통해 굳건하게 세워진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의 주된 사명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네 자손에게 그것들을 열심히 가르칠지니, 네가 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네가 길을 걸을 때나 네가 누워 있을 때나 네가 일어날 때 그 말씀들에 관해 말할지니라』(신 6:7). 그리스도인 아버지들 역시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고 가르쳐야 한다(엡 6:4).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에게 올바르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가르침 없이 복종만 강요하다 보면 자녀를 성나게 하기 일쑤이다. 자녀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은 성경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적으로 사고하고 분별해서 결정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세상 철학과 문화 등에 길들여져서 온갖 세상 풍조가 흘러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려 버리고 만다.

지역 교회 안에서는 나이 많은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에게 절제하는 법, 남편을 사랑하고 복종하는 법, 자녀들을 사랑하는 법, 집안일에 힘쓰는 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딛 2:3-5). 이러한 가르침이 없을 경우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케의 경우처럼(빌 4:2) 분열과 싸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을 수도 있다(딛 2:5).

성경을 가르치려면 잘 배워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거듭나지 않으면 가르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 없다. 니코데모는 분명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지만 그가 거듭나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요 3:10).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이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듯이(고전 2:14),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겸손함으로 배울 자세가 없고 헌신이 되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도 영적인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무관한 자들에게는, 자신의 신념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경의 예언을 사사롭게 해석하고 성경 말씀을 오용하여 자신의 종교를 합리화하려는 특징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영적 지식"과 "혼적 지식"의 차이가 생긴다(약 3:15-18). 혼적 지식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성장의 증거인 변화와 열매를 낳지 못한다. 이는 살아 있는 생명만이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하여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성경을 제외한 다른 모든 책들은 40년 동안 하루에 두 시간씩 시간을 쓰면 그 내용을 완전히 마스터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산봉우리이다(사 28,29장).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성경의 가장 단순한 진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유명하다고 하는 어떤 성경 비평가들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40년 동안 하루에 2-5시간씩 투자를 하면서 전문가로 자처하지만 이들은 그저 미혹만 당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서 온전히 믿는 마음으로 보낸 한 시간이, 그 유명한 성경 비평가들 밑에서 100년 동안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성경을 잘 배워서 가르치려면 올바른 동기로 마음이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에스라가 주의 율법을 찾고 그것을 행하고 규례들과 명령들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것을 마음으로 준비하였더라』(스 7:10).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에 더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줄 선생들을 찾아 나선다(딤후 4:3).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구실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한다. 초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긴 옷 입는 것과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기를 바랐다. 많은 교육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마 23:7,8).

고린도 교회는 바울, 아폴로, 게바(베드로) 등 훌륭한 교사들로부터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잘못된 마음과 동기로 잘못 배움으로써 교만해지고 시기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겸손하지 못한 자들이 교사가 되는 것을 성경은 만류하고 있다(고전 8:1,2). 잘못된 동기로 선생이 되려 하는 것에 대해, 즉 남들에게 가르친 대로 실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한다. 『네 스스로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형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내자요,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요, 어린 아기들의 선생이라고 자신하니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미워하는 네가 신당 물건을 훔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도다』(롬 2:19-24).

겉으로는 형상에게 절하고 기도하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더라도, 자기들의 교세를 확장시키고 교인들의 수와 교회 건물 및 부동산을 늘림으로써 소위 성공적인 사역을 이루기 위해 탐심과 같은 온갖 종류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자행하면서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골 3:5) "유명 인사들"이 기독교계 안에 많이 포진해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교회들 안에는 참다운 "선생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 가운데서 존경받고 크게 높임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인정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청지기들로서 배우고자 하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훌륭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겠다는 좋은 목표가 유능한 믿음의 전사를 만들어 내듯이, 탁월한 성경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지닐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라! 이러한 목표가 없는 사람들을 향해 성경은 이렇게 책망하고 있다. 『그 때로 보면 너희가 마땅히 선생들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원리들이 무엇인지를 누군가가 너희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니, 젖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단단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되지 못하는도다』(히 5:12).

오늘날처럼 배우려 하는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때도 없었다. 그러나 바닷물의 양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것을 담을 "준비된 그릇"이 없으면 간장 종지 하나에도 물을 옮겨 담지 못한다. 이스라엘이든지 교회이든지 그 누구라도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날들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시 90:12).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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