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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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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1월호>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번지”를 중심으로 한 주소 체계를 사용해 왔다. 그러다가 2014년 1월부터 “도로명 주소”가 전면적으로 도입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로명”은 도로명 주소를 부여하기 위해 도로 각 구간에 부여한 이름으로서 “대로”와 “길”로 세분화되어 있다. 흔히들 대한민국이 좁은 땅덩어리라고 말하지만, 이 땅 안에는 수많은 대로와 길들이 복잡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서로 간에 왕래했고, 때로는 그 길을 통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기도 했다. 땅뿐만 아니라 바다와 하늘에도 길을 만들어서 국가 간의 교역을 이루어 왔으며, 심지어 우주로까지 그 길들을 넓혀 나가고 있다.그러나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이 비단 이런 길들뿐이겠는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가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이 있다. 어떤 이는 “작가의 길”을, 어떤 이는 “정치가의 길”을, 또 어떤 이는 “교육자의 길” 등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저마다 어떤 인생의 길을 걷든지 간에 모든 사람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길이 있으니, 곧 『죽음의 길』(잠 14:12; 16:25)이다. 이 땅에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에게는 바로 그 죽음의 길이 “심판으로 이어지는 길”이고(히 9:27), “영원한 고통”이 시작되는 길이다(눅 16:23). 성경은 이 길을 가리켜 『온 땅의 길』(수 23:14)이라 했고, 또한 『세상의 모든 자들의 길』(왕상 2:2)이라고도 말씀한다. 그 모든 길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바로 이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길,” 곧 “영광의 길”로 옮겨 오라고 죄인들을 향해 초청하고 계신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생명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이루어 놓은 일을 보면, 그저 육신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켰을 뿐이다. 특정 질병을 위한 치료제를 개발한다 해도, 또 다른 병원체가 속속 발견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는 “과학”이 사람들을 우주로 옮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해도, 그것으로는 결코 “사람의 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육체의 생명이 피』(레 17:11,14)에 있는데, 타락한 인간을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처방으로는 오직 “하나님의 피”(행 20:28)밖에 없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잠 14:12)이라고 일깨워 주신다.
대학교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학위를 취득하고, 또 노벨상을 받는다 할지라도 “죽음”은 그가 그 길을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그 앞을 막아선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연구를 통해 “새로운 과학적 실체”를 밝혔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의 연구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분자와 원자 그리고 양성자를 발견할 때도 그러했고, 빅뱅 이론이나 평형이론 혹은 양자 이론 등의 학설들이 꾸준히 쏟아져 나올 때도 그러했다. 결국 죽음 앞에서는 그들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더는 진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진리가 더욱 진리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구약의 많은 예언들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고, 또한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그 진리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셨다. 그뿐만 아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그 진리를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셔서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들리게 하셨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게 하셨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와 음성과 환상을 통해 나타나셨고, 또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초림 때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통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것을 또한 믿으라고 명령하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을 통해 기록된 말씀은 모두 동일한 권위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전 15:1-5, 롬 10:9,10).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걷는 길
그리스도인은 그 인생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야 한다. 그 길에서 항상 동행하시는 주님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홀로 그 길을 걷겠다고 하거나 그 여정을 자신이 주도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갈 6:7)이라는 하나님의 원칙에 따라 그 비극은 고스란히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성경은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모든 수고와 밤새 깨어 있는 일이 헛되다.”(시 127:1,2)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길들”에서 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운데(잠 3:6) 계획을 세우고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잠 2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author]요 완성자』(히 12:2)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어 두셨으며 모든 것을 아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권위”(authority) 아래 복종해야 한다. 성경의 “저자”(author)께서는 그분의 뜻과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요 16:13)라고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귀를 돌이키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받았던 심판을 숙고해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롬 15:4, 고전 10:1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40년이라는 세월을 광야에서 맴돌며 방황해야 했다. 말이 40년이지, 이 기간은 한 사람의 인생의(시 90:10) 절반에 해당하는 기나긴 세월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40년이란 기간을 허송세월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큰 손해를 본 것인가?
하나님과 함께 길을 걸으려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주가 말하노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사 55:8,9). 여기서는 “길”과 “생각”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는데, 말하자면 어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생각 없이 그 길을 가지는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옳게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자신에게 옳게 보이는 그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암 3:3)라는 말씀처럼 자기 생각에 동의가 되지 않는 그 길을 가려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거듭났다면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가는 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잠 3:21-26).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정결케 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시 119:9).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육신은 늘 성령을 거스르고 욕심을 부리며, 눈에 보이는 지름길, 곧 길이 아닌 길로 가로질러 가려고 한다. 이러한 정욕이 우리의 믿음을 파선케 하는 지름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원한 영광의 길
사람들이 현 생애를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염려하는 것들 중 하나는 “자신의 앞날”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점술 시장”의 규모가 무려 4조 원이 넘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와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위험과 실패가 가져올 슬픔에 대해 두려워한다. 이들은 인생의 길이 점괘대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안위하고 있을 뿐이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은 자신의 길을 직접 설계하고 직접 실행해 나간다. 하지만 그 “걸음”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의 모든 걸음이 자기 뜻대로 된다면, 『역경은 티끌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고생도 땅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지만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 5:6,7)라는 말씀은 거짓말이 된다. 또한 “역경”(잠 24:10)이라는 단어도 성경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런가 하면 『인생의 길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고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것이 걷는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렘 10:23)을 깨달아 자신의 모든 인생의 길에서 주님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생명과 진리의 길에 서 있다 하더라도 항상 그 길 주위에는 우리의 대적 마귀도 은밀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마귀의 불붙은 화살들이 날아들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 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끊임없는 죄의 유혹과 핍박이 쇄도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시며, 또한 그 시험을 피할 길도 마련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전 10:13). 그러므로 자신에게 닥칠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라!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그가 박해했던(행 9:5)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이스라엘인으로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빌 3:5), 가말리엘 밑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며, 심지어 로마 시민권까지 지니고 있던 그야말로 자긍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회심한 이후로는 그를 부르시고 그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어 영광스러운 길을 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와 고난을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성령께서 각 성읍에서 증거하여 말씀하시기를 결박과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니라.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이제 그와 동일한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바울은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 11:1, 빌 3:17)라고 권면한다. 주님께서도 복된 소망 가운데서 함께 걷게 될 “황금길”을 향해 좀 더 힘을 내라고 하시면서 이런 말로 용기를 북돋워 주신다.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길이 있었다. 중국과 서아시아를 잇는 고대의 무역로인 “비단길”이 있었고,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제패해 나간 길이 있었으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하는 그런 길도 있었다. 비록 이 땅에는 수많은 길이 있었고, 심지어 우주로 나가는 길까지 열리고 있다 할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진리이시자 영원한 생명의 길이시다(요 14:6). 그 길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인간은 “거짓말의 아비”인 마귀와 함께 영원한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말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