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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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예언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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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1월호>

사도 베드로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형산 사건”을 목도한 세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주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만을 데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것은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몇은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마 16:28)라고 재림에 관해 미리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그 높은 산에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을 때 그분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희어졌는데(마 17:2), 그 세 명의 제자가 변형산에서 보았던 그 능력 있는 모습은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 곧 “재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차 그분의 왕국으로 오시는 주님께서는 그처럼 놀랍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오실 것이다.


한편 세 제자 가운데 요한은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두 번” 적용된 특별한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티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에 관하여 예언하셨을 때(요 21:18,19), 베드로가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나이까?』(요 21:21)라고 하면서 요한의 운명에 대해 여쭈었는데, 그때 주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요 21:22)라고 반문하셨다. 이 말씀은 요한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제자들 사이에 오해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요한이 아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하신 것이었다. “내가 올 때까지,” 즉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이 지상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이지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요한이 과연 주님의 재림 때까지 지상에 살아 있었단 말인가? 실제로 그러했는데, 주님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 팟모 섬에 있던(계 1:9) 요한이 성령 안에서 『주의 날』(계 1:10), 곧 미래의 “재림 때”로 이동하여 재림을 직접 목도했던 것이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 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고 흰 말들을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1-14).


이런 요한과 달리 베드로에게는 죽기 전에 주님의 재림을 두 번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에게도 남다른 계시가 있었다. 베드로는 변형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나이다.』(마 17:4)라고 했는데,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장막”이라는 말에 특별한 계시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와 엘리야는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두 증인이고(계 11장), 그들이 변형산에 나타난 것은 주님께서 “재림 때의 모습”으로 변형되신 상황에서였기 때문이다. 특히 베드로의 입에서 튀어나온 “장막” 역시 성경에서 “재림을 예표하는 장막절”과 관련이 있다. 장막절이 재림을 예표하는 명절이라는 점이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계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에 빠졌다가 깨어난(눅 9:32) 베드로가 자기도 모르게(막 9:6)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은, 그 순간 베드로에게 “초자연적인 계시”가 임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베드로는 변형산에서의 이 경험을 그의 두 번째 서신에 기록했는데, 이 일과 관련하여 “능력과 오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오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은 교묘하게 꾸며 낸 이야기를 쫓은 것이 아니라 그의 위엄의 목격자들이었기 때문이라. 지극히 큰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음성은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에서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8). 성령의 영감으로 말씀을 기록한 베드로는 마태복음 16:28의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이란 말씀을 반영하여, 그때 그 사건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오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초림 때 일개 죄인들에게 붙잡히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정도로 『하나님의 연약함』(고전 1:25)을 보이셨던 예수님께서 세 제자에게 계시하신 재림의 모습은 분명 그분의 능력과 오심 그 자체였다! 주님의 능력과 오심은 “거룩한 산”에서 계시가 되었는데, 그 산은 “시내 산”이었다. 흔히 변형산을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있는 헤르몬 산이라고 가르치지만, 주님께서 “재림”과 관련하여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신 산은 분명 시내 산이었다. 이는 시내 산이 주님께서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에게 말씀하신 장소였고(출 3:1-5, 왕상 19:8-12), 주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셨던 출애굽기 19장의 사건은 “심히 두렵고 떨리는”(히 12:21) 그 광경으로 인해 “재림의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오심』은 주님께서 그분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살후 1:7)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 오심으로써 성취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림을 믿지 않는 목사들과 신학자들과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목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큰소리치며 교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재림을 믿지 않는데 십자가는 어떻게 믿는가? 사실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구속도 온전히 믿지 않은 채 자기들의 행위를 더하여 믿는 척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교회 안의 위선자들이다! 과거 변형산에서 보여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오심』에 관한 예언은 재림 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이기에 그것은 역사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매년 토정비결을 보고 무당이나 중들에게 물어서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어리석은 군상들이 있는데, 심지어 교회 안에도 점을 보러 다니는 자들이 있다고 한다. 재림에 관한 성경의 확실한 예언은 의심하면서도, 점쟁이들의 예언에는 귀가 솔깃하는 모양이다. 『주가 말하노니... 그들로 주장들을 내어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에게 보이게 하라. 그들로 이전 일들을 보이게 하여, 그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로 그 일들을 숙고하고 그 일들의 나중 결말도 알게 하라. 아니면 앞으로 있을 일들을 우리에게 선포할지니라. 이후에 있을 일들을 보여 주어 우리로 너희가 신들인 것을 알게 하라. 정녕,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라. 우리가 놀라며 그것을 함께 보리라.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의 일은 헛것이라.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함이라』(사 41:21-24). 여기서는 하나님과 우상들 간의 차이점이 “예언의 성취”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점을 친다고 미래를 알게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강력하게 선포하시는데, 그들이 쫓는 우상이 신이라면 어디 한번 예언해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놀라며 그것을 함께 보리라!”


예언과 그 성취는 참 신과 거짓 신을 구분한다. 주님께서는 우상이 헛되다는 사실을 “예언과 그 성취”를 근거로 책망하신 후에 그분 자신이 어떤 “신”이신가를 이렇게 선포하신다. 『너희는 오래된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요, 다른 이는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처음부터 그 끝을 선포하고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옛날부터 선포하고 말하기를 “나의 계획이 확고하리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행하리라.” 하였고』(사 46:9,10). 『나는 처음부터 그 일을 네게 선포하였으니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그것을 네게 보여 주었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말하기를 “나의 우상이 그 일들을 행했으며, 나의 새긴 형상과 주조한 형상이 그들에게 명하였다.” 하였으리라』(사 48:5). 이처럼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위대하심은 예언과 그 성취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상의 극명한 차이점이다.


또한 예언과 그 성취는 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딤후 3:16, 벧후 1:21) 책이라는 증거이기도 한데,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예언이기에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이다. <세대적 진리>의 저자인 클라렌스 라킨은 참된 예언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예언은 그것이 성취되기 이전에 알려져 있어야 한다. 둘째, 예언은 모든 인간의 예견을 능가해야 한다. 셋째, 예언은 아주 상세해야 한다. 넷째, 선지자 자신이나 그 예언에 관심 있는 어떤 사람도 그 예언을 스스로 성취하지 못하게 하도록 예언이 공표된 때와 성취되는 때 사이에 충분한 시간적 간격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그 예언의 성취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책이 바로 “성경”인 것이다!

성경의 예언들은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렘 1:9) 하나님의 말씀으로 직접 주어지기도 하지만, 기록된 사건이나 절기들을 통해 예표로 주어지기도 한다. 앞선 변형산 사건 때 베드로가 말한 “장막”은 구약의 일곱 명절 가운데 “장막절”과 관련 있는데, 그 사건에서 나타난 주님의 능력 있는 모습은 장막절의 예표적 의미인 “재림”을 예시한 것이었다. 이처럼 구약의 명절은 단순히 유대인의 절기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예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명절 또한 영감으로 주어진 기록이므로 그것이 예표적으로 “성취”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하고 기록했어도 때로는 그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벧전 1:10-12). 구약의 명절들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명절을 지키라는 명령이 주어졌을 때 백성들은 물론 모세조차도 그 안에 담긴 예언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왜 그런 것인가? 구약의 명절들의 “예언적” 의미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실(요 16:13) 교회 시대에 온전히 계시되기 때문이다. 그 명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예표들이므로 그분과 그분의 몸 된 교회에 계시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교회에 계시된 일곱 명절의 예언적 의미와 성취는 다음과 같다.


1. 유월절 : 유월절 양(고전 5:7)이신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 성취
2. 무교절 : 성도의 죄 없는 생활 - 현 교회 시대에 성취를 위해 성도들에게 순종이 요구됨
3. 초실절 : 예수님의 부활과 구약 성도들의 부활(마 27:52,53) - 성취
4. 오순절 : 교회의 탄생(행 2장) - 성취, 교회의 휴거(살전 4:13-18) - 미성취
5. 나팔절 : 교회의 휴거 이후 대환란 끝에 있을 이스라엘의 본토 귀환 - 미성취
6. 속죄일 :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 - 성취, 이스라엘의 민족적 속죄 - 미성취
7. 장막절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서의 안식 - 미성취


보다시피 갈보리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누룩(죄, 거짓 교리)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을 계시한 “무교절”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명절은 직접적이고 교리상으로 예언적인 의미가 있다. 성취 면에서 보면, “유월절”은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 5:7)이신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로 성취되었고, “초실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과 그때 함께 일어난 구약 성도들의 부활로 성취되었다. “오순절”은 교회의 탄생과 휴거를 예표하는데, 그중에서 교회의 탄생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취되었고, 휴거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상태이다. 대환란 끝에 있을 이스라엘의 본토 귀환(“나팔절”)과 그들의 민족적 속죄(“속죄일”), 재림과 천년왕국(“장막절”) 역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성취되지 않은 이 사건들 역시 재림과 더불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초림 및 교회 시대와 연관된 명절들이 예표적으로 성취되었다면, 나머지 재림과 관련된 명절들, 곧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 안에 내포된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지상 재림은 구약에서 “주의 날”로 예언되어 있는데, 성경의 중심에 놓인 그 사건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 5:7)이시라는 점에만 집착한 나머지 유월절과 십자가를 연관시키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들이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신앙은 기초를 떠나 성장해야 의미가 있다(히 5:12-14). 젖만 빨고 자라지 않는 아이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성경은 공부하라고 주신 책이므로, 그 책을 열심히 공부하여 예언을 깨닫고 재림을 기다리는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딤후 2:15). 당연히 “바른 성경”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바른 성경으로 재림을 믿고 대비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될 수 없다. 성경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면 성경을 봐야 할 이유도 없다. 성경을 형식적으로 볼 거라면 차라리 안 보는 편이 나은 것이다! 말씀에 대한 의심은 마귀가 불어넣는다(창 3:1). 당신의 교회는 마귀의 교회인가, 하나님의 교회인가? 당신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심하는가, 아니면 믿고서 참되게 가르치는가!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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