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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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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1월호>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최악의 통계들이 대한민국을 잠식했고, 가계 빚과 실업 급여, 비정규직과 이자도 못 갚는 기업들의 수가 늘었으며, 전셋값은 고공비행 중이다. 자살률은 5년 만(2018년)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소득과 취업자 수는 동시에 곤두박질쳤고, 문재인 정권의 주요 지지 기반인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기업이 가시밭길에 내팽개쳐졌다. 그간 청와대가 그토록 자랑해 왔던 코로나19에 대한 K-방역의 우수성은, 고비 때마다 드러난 대통령과 정부의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 그에 따른 안일한 대처, 백신 확보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경기는 잘하고서도 정작 중요한 골은 넣지 못한 축구 경기처럼 역전패할 상황에 놓여 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상 초유의 검찰 총장 징계를 초래한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론을 더욱 분열시켰고 정권의 몰락을 앞당겼다. 결국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될 만큼 “무리수”를 둔 그녀는 본연의 임무를 마친 후 “토사구팽”된 것이나 다름없는 말을 대통령에게서 들었다. 지난 3년 6개월간의 정부 시책들을 돌아보건대, 현 정권은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이전의 보수 정권에 대한 “복수,” 오직 “복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정권이란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한번은 북왕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악의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 왕의 아들 “요람”이 예후를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다. 『예후야, 평안이냐?』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안을 진멸시키기 위해 세우신 “예후”는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그녀의 마법이 이처럼 많은데 무슨 평안이 있겠나이까?』라고 반문했다(왕하 9:22).
지난 11월 27일, 서울대학교 게시판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형식의 글”로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와 사회적인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글을 올린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안합니다”라는 제목하에 최순실 사태, 채동욱 사태, 메르스 대처 등이 현 정부에 비하면 오히려 훌륭하고 성숙한 대처였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에 미르와 K스포츠 만들어서 기업들의 돈을 뜯어먹었다고 욕했는데, 오늘날 옵티머스와 프라임 사태를 보니 서민들의 돈 몇조 원 뜯는 것보다 차라리 기업들의 돈 몇천억 원을 뜯어 쓰는 게 훨씬 나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잘못했다고 욕해서 미안합니다.” “최순실 딸을 이화여대에 입학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욕했는데, 조국의 아들딸 서류를 위조한 것을 보니 최순실 딸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그나마 성실히 노력해서 대학 간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위안부 합의했다고 욕했는데, 윤미향 하는 짓을 보니 그 당시의 합의는 그나마 떼먹는 놈 없이 할머니들에게 직접 돈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최경환 부총리가 나와서 집을 사라고 했을 때 욕했는데, 지금은 국민에게 집 사지 말라고 하면서 집값과 전셋값을 계속 올리는 것을 보니, 당시에 집을 사라고 한 건 서민을 위한 선견지명의 정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시에 메르스 대처를 잘못했다고 욕했는데, 지금 코로나로 난리가 나고 독감 백신 접종하고 사람들 죽어 나가는 것을 보니까 그때 그 정도로 끝낸 건 무난한 대처였던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최악의 정부라고 욕해서 미안합니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미국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1969년에 그의 대표곡 “My Way”(마이웨이)를 발표했다. “자신감과 확신에 차서 내 갈 길 가겠노라.”라고 노래한 시나트라의 확고한 자세에서 빗대어 나온 용어 하나가 있는데, 바로 “시나트라 독트린”(Sinatra Doctrine)이다. 이것은 1989년에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가 자신이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에 따라 소련의 동맹국들에게 각자 제 갈 길들을 가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독립하게 만든 선언이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심리학자 “토니 애트우드”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에 붙인 이름으로 “시나트라 증후군”(Sinatra Syndrome)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어 다른 사람들과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고, 더 나아가서는 명백한 오류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쉽게 바로잡지 못하는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고집불통 외고집쟁이”의 “마이웨이”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마이웨이”는 최근 확진자 수 “천 명”을 오르내리면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 준 대통령의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 지난 2월 대통령이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며칠 후 대구의 신천지 사태가 터졌고, 3월에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그날 구로구 콜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 10월에는 비상사태에 맞지 않게 너무 빨리 1단계로 낮추고 소비 쿠폰 발행을 재개하면서 이러한 시책은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고, 11월에는 “드디어 백신과 치료제로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라고 하면서 정부의 방역 역량을 믿어 달라고 했지만, 실로 그런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코로나는 무섭게 확산하면서 조만간 하루 확진자 수가 2천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여러 차례 대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해법은 안 보이고 도리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소통이 전혀 안 되는 문재인 정권의 거짓말과 외곬의 정책은 어디까지 치달을 것이며, 고통받는 국민은 언제까지 인내해야 한단 말인가?
1949년 미국 에드워드공군기지에서 일하던 머피 대위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인 “머피의 법칙”이란 것이 있는데, 이 법칙은 현 정권의 실태를 너무나 잘 반영해 준다. 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자만이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쪽 귀를 닫고 오직 마이웨이만 외치는 대통령의 “자신감”은 그의 무지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그의 측근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가?
② “한번 일이 꼬이면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악화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부의 시책은 24번의 부동산 대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③ “터널 끝에 비치는 빛은 당신을 향해서 달려오는 기차일 수도 있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긴 터널에 정말 끝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백신 확보”가 늦어지는 바람에 다른 나라들은 사회 전체가 정상화되어 갈 동안 우리나라만 고통 속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돈을 아끼기 위해 시기를 늦추었다거나 안정성을 위해 다른 나라들이 접종하는 것을 보고 하겠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은 국민을 기만하는 속임수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백신을 나누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국민의 분노를 부추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자이다.
④ “어머니는 이런 날들이 올 것이라고 하셨지만, 이렇게 긴 세월이 될 것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직도 대통령 임기가 1년 6개월이나 남아 있다!
⑤ “아이디어가 나쁘면 나쁠수록 그것을 제안하는 멍청이는 더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다.” 현 정부의 주요 장관들 대부분이 딱 그 모습이다!
⑥ “일이 잘못되었을 때 웃는 사람은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대통령 밑에서는 토사구팽당하는 행동 대원들만 고생하게 된다.
⑦ “스스로 나서서 권위를 떠맡겠다고 하는 자를 절대 신뢰하지 말라.” 스스로 권좌에 올랐을 뿐 아니라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대통령을 어떻게 신뢰한단 말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지나간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 메르스와 조류 독감, 소통의 부재 등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사람과 정권만 교체되었을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는커녕 후퇴만 거듭하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본보기가 되고 또 세상의 끝날들을 당한 우리에게 권면으로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과거의 역사와 실패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한 자들의 실상은 마치 토한 것으로 다시 돌아가는 개의 모습과 똑같다. 『개가 자기의 토한 것으로 돌아감같이 어리석은 자도 자기의 미련함으로 돌아가느니라』(잠 26:11). 개가 토한 것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으로 지저분하고 역겨운 일이지만, 실제로 가만히 앉아서 개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더더욱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개들은 그렇게 토한 것을 다시 핥아먹으면서도 전혀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훈을 배우지 못한 “국가” 역시 누군가가 쏟아 놓은 구토물을 그대로 핥아먹고 있다. 그래서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 세상 국가들의 역사”를 가리켜 “병든 개들의 역사”라고 말했다. 어떤 국가라도 그 이전에 존재했던 나라들이 토해 놓은 역사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구토물을 깨끗하게 먹어 치우면서 더 심한 병이 들고, 결국 그들을 따라 패망의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현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만 적폐를 청산할 뿐 “그들 편에 서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적폐를 청산하지 않는다. 이전 정권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이전 정권이 쏟아 놓은 구토물을 치워 버리기는커녕 그대로 먹어 치움으로써 “내로남불”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과연 그 끝은 무엇이겠는가? 정권의 몰락이고 패망이다! 그런 사이에 국가는 더욱 병들어 가고 국민만 힘들어진다.
무너진 외교와 남북 관계, 부동산 세금 폭탄과 민생 경제의 파탄, 정치인들의 무너진 도덕성, 무능한 정부의 어리석은 시책들,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 국론 분열, 거짓말, 위선, “사회주의”를 향한 진보 좌파 정권의 발걸음 그리고 “정의”가 180석을 자랑하는 거대 여당의 이익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이 되고, 공의롭게 집행되어야 할 법은 “공수처”처럼 정권을 장악한 자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도구가 되어 버린 시대,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 이제는 독감 유행과 조류 독감 확산까지, 요즘은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야말로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몇 번이고 더 멸망해도 시원찮을 그런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줄잡아 5만 6천 개나 있다고 하는 교회들은 어떠한가? 돈과 권력과 음행을 사랑하는 목사들, 아무 설교에나 “아멘! 아멘!” 하는 교인들, 구원받지도 않은 교인들로 가득 찬 교회들, 쓸데없는 일로 분주하고 전도지 한 장 만들지 못하는 교회들, 그들은 이미 목사이기를 포기했고, 교회이기를 포기한 지도 오래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라에서, 교회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목사들과 교인들과 교회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비참한 현실이다!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이런 “한국식 기독교”가 있었던 적이 있는가? 『경이롭고 무서운 일이 그 땅에서 행해지는도다.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0,31)
그리스도인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롬 15:4). 자신의 비참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주정뱅이들은 다시 술병으로 돌아온다. 마약 중독자는 다시 마약을 찾는다. 담배 중독자는 다시 암을 유발하는 담배를 입에 문다. TV, 게임, 스마트폰 중독자는 다시 그 기기들을 집어 든다. 정욕이 불타고 음욕을 못 이기는 자들은 다시 음란한 행실로 돌아오되 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것들을 추구한다. 돈에 환장한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말처럼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런 악한 현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개처럼 토한 것으로 다시 돌아가는 성도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속이 어떠하실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헌신과 약속을 한낱 휴지 조각처럼 만드는 성도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는가?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토해 내고 싶으실 지경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이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우리가 성별의 위치를 상실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실제로 슬퍼하신다. 우리가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시기와 탐심을 추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께서는 실제로 슬퍼하신다. 우리가 육신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죄를 짓는 동안 가장 슬퍼하시는 분은 온 우주에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성령님이시다. 그분을 슬프게 해 드리는 행동은 일종의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리는 “배신”이다. 지금 당장 그런 가증한 짓들을 일삼는 미지근한 신앙의 행보를 중단해야 한다. “최악의 교회 시대”에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최악의 성도”가 되지 말고,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가운데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역행할 수 있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최상의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