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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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훈련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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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1월호>

주님을 진지하게 섬기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느 날 문득 스치곤 하는 고민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과연 주님의 제자인 것인가?'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정받는 것은 몹시도 영광스러운 일이나, 그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제자 훈련" 하면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의 이전 담임목사를 떠올리는데, 최근에는 『광인 옥한흠』이라는 영화까지 배급되어 그의 비성경적인 사역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는 차에 주님의 제자는 결코 "제자 훈련"을 통해 만들어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인지하고, 참된 제자는 어떻게 빚어지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우선 "제자 훈련"이란 명칭은 변개된 개역성경의 마태복음 28:19에서 취한 용어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에서 가져온 것이다.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가르치고』를 "제자를 삼아"로 변개시킨 개역성경에서 제자 훈련이라는 엉뚱한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첫 단추부터 줄줄이 잘못 끼워진 것이 교회라고 불리는 곳들에서 유행을 타고 번진 것인데,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지면 어색하고 볼품이 없어지는 고로, 제자 훈련이라는 것도 그 결과가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그들 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제자 훈련의 본산인 사랑의교회에서 줄기차게 들려오는 잡음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성경에서 "제자"를 말할 때는 영어로 "disciple"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discipline"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discipline"은 "훈련하다, 단련하다, 길들이다" 등의 뜻을 갖는 단어로서, 주님의 제자(disciple)가 되려면 거듭난 후 훈련받고 단련되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길들여져야 함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훈련받고 단련되고 길들여져야 제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인가? "제자 훈련"을 받으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을 믿고 거듭난 성도가 바른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을 때 제자로서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 성경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시리아 안티옥의 "제자들"을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를 만나 안티옥으로 데리고 오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일 년 내내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니 안티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더라』(행 11:26). 성경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가 아닌 시리아 안티옥의 제자들이었다. 교회들이 쓰는 성경에는 시리아 안티옥을 기점으로 전파된 "바른 성경"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에게서 비롯된 "변개된 성경" 두 종류가 있는데, 안티옥의 제자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동일한, 보존된 성경을 최종권위로 삼았던 것이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시리아 안티옥 계열의 바른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도, 주님의 제자도 아닌 헛것에 불과하다.

② 주님의 제자는 신실한 복음 전도자와, 바른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는 성경 교사가 있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 가는 사람이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못하니라. 제자가 자기의 선생같이 되고 종이 그 주인같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라.』(마 10:24,25)라고 말씀하셨다. 제자인 그리스도인의 『선생』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제자가 자기 선생과 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선생님께 배워야 하는 것인데, 지금 이 교회 시대에 주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성경을 가르치시는가? "사도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교회에 『복음 전도자』와 특히 『목사와 교사』를 주셨는데(엡 4:11),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 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엡 4:12,13)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는 "복음 전도자들"이 있고, 바른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목사와 교사"가 있는 것은, 성도 각인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게 하려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셋째 하늘로 부활 승천하시어 올라가신 뒤로는 성령님께서 임무 교대하시어 그리스도인 각인의 몸 안에 들어오셨고, 그 뒤 어떤 성도들은 은사들을 주시어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는데 바로 그들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들을 가르치시어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지역 교회에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한 성경 교사들이 없다면 제자 양성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들로 오염되고 갈라져 버린 이 나라 5만 6천 개의 교회들에는 복음을 순수하게 전할 수 있는 전도자들이 없고 성경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목사와 교사가 없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양성될 수 있겠는가! 그저 제자 훈련이란 것만 붙들고 제자들을 만들어 낸다고 아우성인데, 그 일이 주님께서 시키신 일이라면 왜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도 그 모양 그 꼴로 온갖 지탄을 받아 오고 있단 말인가?

③ 주님의 제자는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나" 자신을 부인할 줄 아는 사람만 될 수 있다 .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4: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정녕,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은 채 내게로 오면 그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 최대 걸림돌은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 형제, 자매"는 모두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며, 그 미움의 정점에 "자기 목숨," 곧 "내 목숨"까지도 언급하셨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나"와 관련된 것들이며, 따라서 이것은 "자기 부인"의 정도와 범위를 설정해 주신 말씀인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얻으리라』(마 16:24,25). 자기 부인은 주님을 위해 자신의 곁가지들을 모두 쳐내고 몸통까지도 쳐내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죽을 각오"로 주님을 따른다는 얘기인데, 주님이 계신 셋째 하늘에 어서 가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면 살고자 하는 것이 육신의 속성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생명에 위험이 닥치면 저 믿음의 뒤편에서는 살길을 찾으려 하는 것이 육신의 속성이다. 주님을 섬기다가 닥칠 수 있는 생명의 위험들 앞에서 죽음을 마다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목숨까지도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첫째로 사랑할 때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④ 주님의 제자는 주님 안에 거하여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는 사람이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 15:5).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무능력을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자신의 무능력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계신 주님의 능력을 인식한다는 뜻이며(고후 4:7), 그때서야 주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성도가 맺을 수 있는 구령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는 그 성도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께서 맺으시는 열매다. 열매를 내는 것은 포도나무 자체, 곧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지인 우리는 그 열매를 달고 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일이 요구될 따름이다. 즉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분의 역사를 따라 수고하며 애쓰』는 것과(골 1:2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의의 열매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돌려지도록 하는 일이(빌 1:11)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자신의 약함과 자기 안에 계신 분의 능력을 인식하고(고후 12:9), 주님께서 성도 자신 안에서 맺으시는 많은 열매로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사람인 것이다.

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책망에 대해 주님을 향한 "쓴 뿌리"를 갖지 않는 사람이다 . 사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겠나이다.』(막 14:31)라고 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위해 칼을 빼 들고 싸운 일로 되레 책망을 받자 마음에 "쓴 뿌리"가 생겨 주님을 부인해 버렸다.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하나는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자의 친척이라. 그가 말하기를 "내가 그와 함께 동산에 있는 너를 보지 아니하였느냐?"고 하니라. 그러자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니 즉시 닭이 울더라』(요 18:26,27). 이때 베드로는 "제자의 자격"을 상실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당시 천사가 무덤에 온 여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주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주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리니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곳에서 너희가 주를 보리라.'고 말하라.』(막 16:7)라고 했는데, 이때 천사는 『주의 제자들과 베드로』라는 말을 통해 베드로를 "제자들"로부터 분리시켰다. 베드로는 주님의 책망에 그만 실족해 버려 제자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제자는 징계를 통해서도 만들어진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픈 것 같으나 후에 그로 인하여 훈련된 자들에게는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징계는 제자를 만들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철저히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순간에도 주님께 불평하지 않고 섬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실로 고된 훈련과 같지만, 그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삼고 자신의 가치관을 성경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면,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주님의 제자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살전 1:6) 이외에도 제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다른 진리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분히 훈련되고 단련되고 길들여질 수 있다. 제자는 "제자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바른 성경에 계시된 진리로 되는 것이다!(딤후 3:16,1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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