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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언적인 모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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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7월호>
구약의 주제는 재림우리는 구약성경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든 구약성경의 구구절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구약을 기록한 기자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기보다는 단지 그분의 일회적인 오심이었다. 하지만 성경의 모든 예언과 주후 20세기 말까지의 모든 역사를 지켜 본 우리는 그 모든 예언들이 “초림”보다는 “재림”에 맞추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바로는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다루는 것이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때는 죄인을 구속해 주러 오신 반면, 재림 때는 온 세상의 심판주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 이 점에 있어서 구약성경은 죄인의 구주되시는 그리스도의 초림보다는 그분이 자신의 왕국의 왕으로 오시는 재림을 훨씬 더 많이 제시하고 강조한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으심도 기록하지만, 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겪는 대환란이라든지(렘 30:7),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습, 모든 이방 민족들을 무너뜨리고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시 2:9, 단 2:44), 아마겟돈 전쟁(욜 2장), 의의 태양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말 4:2), 재림의 행로(사 11:16), 천년왕국 성전(겔 40-46장), 천년왕국 때의 자연 회복(사 11:6-9), 재림 때에 있을 민족들의 심판(암 1-2장), 재림 때 산들의 정상에 우뚝 서서 그분의 도성이 될 시온산 예루살렘(미 4:1-2),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시는 대장이 되시어 그들을 천년왕국이라는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실 그리스도(수 10,11장), 환란 때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죄를 용서하시고 새 언약을 맺으시어(렘 31:33,34) 궁극적으로 다윗의 보좌에 앉아 그분의 왕국을 완성시키시는 모습(삼하 7:16, 시 24편) 등을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면들이 바로 구약성경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을 확증해 주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주제는 신약성경에까지 이어진다. 총 87장밖에 안되는, 히브리서를 제외한 열 세 권의 바울서신을 빼면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베드로후서와 계시록으로 이어지는 주제는 구약성경과 연결된 주제이다. 이 모든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세우실 그분의 왕국,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성경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성경 전체의 주제를 “왕국”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이제부터 살펴볼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분의 재림의 모습이다. 구약에 나타난 비유와 모형과 예언을 통해서 그분의 재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재림에 관한 모든 사실들이 구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면들을 살펴볼 것이다. 성경 전체가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한다.) 성경의 모든 책들에서 그분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는 것은 성경의 핵심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의 기록인 구약성경에서 그분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분을 찾기 쉽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좀 어렵다. 신약에서는 어디를 펼쳐봐도 예수님이 계신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다루어져 있고, 사도행전에서는 그분을 전파하는 사도들의 모습, 여러 서신서에는 그분에 관한 모든 교리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그분에 관한 예언들이 있다. 신약성경 어디를 펼쳐봐도 예수 그리스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활동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대신 구약성경은 그분에 대한 모형과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들과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봐야 하며, 그분에 대한 예언을 연구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연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그대로 믿으려고 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교단 교리와 자기들의 생각의 틀 안에서만 해석하고자 하는 학자들과 그들에게 배운 무지한 영적 소경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모형과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시편 78편을 보자.
시편 78:2 내가 입을 열어 한 비유로 난해한 옛 말들을 말하리니.
이 말씀은 마태복음 13:35에서도 인용된 구절이다. 비유는 예수님께서도 친히 즐겨 사용하시던 방법으로써(마 11:16; 13:3; 21:33, 막 3:23; 12:1; 13:28, 눅 6:39; 18:1), 어떤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이다. 특별히 시편 78편에서는 앞으로 올 세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시 78:4). 즉 미래에 있을 일들과 관련하여 사용된다는 것이다. 호세아 12장에서의 비유는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과 연관된다. 내가 또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하였고, 내가 환상들을 많이 늘렸으며, 선지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비유를 사용했노라(호 12:10). 그러므로 미래의 일들은 비유로 예언되고, 과거의 일들은 미래의 일들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을 읽을 때 우리는 “모형”으로서 비유를 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형들은 선지자들이 말했던 직접적인 예언과는 달리 비유적인 예언, 즉 간접적인 예언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구약은 모형에 있어서 매우 풍성하다. 창세기 3장에서 피를 흘린 어린 양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 것부터 시작해서 구약성경은 모형으로 가득 찬 책이다. 그리고 그 모형들은 각각 그 원형, 즉 실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만든 성막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산에서 보여 주신 “모양에 따라” 만들어졌다(출 25:40, 히 8:5). 이것 역시 모형인데, 이에 대한 실체, 즉 원형은 하늘에 있는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이다(히 9:11).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돌아올 때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는데, 그 멜키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아브라함은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약속은 그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었으며, 그 예언은 모세와 더불어 출애굽할 때 성취된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 또한 앞으로 있을 더 큰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의 백성이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사건에 대한 모형이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그 땅에 대한 언약은 여호수아가 열두 지파에게 그 땅을 분할한 것으로 성취되었고, 솔로몬이 그 땅을 다스린 것으로 재성취되었다(왕상 4:21,24). 그러나 예수님께서 천년왕국 때에 “왕의 수여지역”(Royal Grant)으로 그 땅을 직접 다스리시는 더 큰 사건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은 실체를 바라보고 있는 모형적인 사건들로 제시된다. 물론 그 사건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사건들이고 분명한 역사이다. 그 사건들이 모형이 된다고 해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사건들의 역사성이 흐려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들은 선지자들이 말한 예언과 같은 강도로 미래의 일들을 알게 하는 예언적인 모형들이다. 어떤 것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모형이고, 어떤 것은 재림에 대한 모형이며, 어떤 것은 초림과 재림, 둘 다에 대한 모형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모형들과 또 선지자들이 말한 예언들을 함께 다루면서 그 성취를 미리 살펴볼 것이다.
예언의 임박한 성취
분명한 것은 성경에 나온 이 모든 모형과 예언이 성취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 모든 일들은 곧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 날에는 지금 우리가 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을 희미하게 보지 않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처럼 분명하게 볼 것이다(고전 13:12). 하지만 아직 그 날이 오지 않은 지금은 말씀을 통해 그 모형과 예언들을 열심히 연구함으로써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고(딤전 2:4), 우리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딤후 2:15). 그러므로 우리가 그 날이 올 때까지 전심전력하여 그 예언들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다(벧후 1:19).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 예언들의 성취를 미리 볼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더 큰 확신 가운데 그 일들의 성취를 더욱 간절하게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