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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절과 그리스도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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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0월호>
이스라엘은 율법에 관한 한 모든 것들을 광야 생활중에 받았다. 그 중에는 명절들에 관한 규례들도 있는데, 이는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레 23장, 신 16장).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절들이 일곱 개 제시된다. 그것들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이다. 이 명절들은 크게 세 개의 군으로 나뉘어지는데,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첫째 달에 연속적으로 지켜지는 명절들로서 하나로 묶여지고, 두 달 후에 따로 있는 오순절이 또 하나요, 일곱째 달에 나팔절과 속죄일과 장막절이 연결되어 또 하나로 묶여진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즉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예루살렘에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야 했는데(출 34:23, 신 16:16, 대하 8:13), 사실상 그들이 세 번 올라가면 일곱 개의 명절을 모두 지키는 셈이 된다. 신약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같은 절기로 취급되기도 한다(막 14:12).중요한 것은 이 각각의 명절들이 미래에 있을 사건들에 대한 예표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월절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시는 것에 대한 예표이며, 오순절은 사도행전 2장에서 교회가 탄생되는 예표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가 특별하게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장막절인데, 이는 장막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예표이기 때문이다.
장막절은 기본적으로 광야 생활을 끝낸 유대인들이 과거 광야 생활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였다. 장막은 항상 임시적인 장소였으며, 온전한 장소를 소망하게 하던 곳이다. 이스라엘은 이 장막절을 지킴으로써 앞으로 천년왕국 때 이루어질 온전한 장소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명절들에 관한 규례를 주셨다. 그리고 이 명절들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지키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장막절에 대해서는 좀 더 특별한 명령이 부가되어 있다. 너는 네 곡식과 네 포도주를 거둬들인 후, 칠 일 동안 장막절을 지킬지니라(신 16:13). 곡식과 포도주는 항상 이스라엘의 풍요함을 상징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축복이었다. 네가 들어가서 차지하려고 하는 그 땅은 작은 산들과 골짜기들이 있는 땅이라, 하늘의 빗물을 흡수하느니라...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며, 너희 마음을 다하고 너희 혼을 다해 그를 섬기면, 내가 그 때를 맞추어 너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너희 땅에 내릴 것이니, 네가 네 곡식과 네 포도주와 네 기름을 거둘 것이요(신 11:11-14). 그 약속의 땅은 풍요한 땅이었다. 이 땅은 두말할 나위 없이 천년왕국 때 회복되는 팔레스타인 땅을 예표한다. 회복되는 그 땅의 풍요로움에 대해서는 요엘 선지자도 예언하기를 그 날에 산들이 새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에는 젖이 흐를 것이요, 유다의 모든 강들에는 물이 흐를 것이며, 주의 집에서 샘이 흘러 나와 싯팀 골짜기에 물을 대리라.(욜 3:18)고 할 정도였다.
천년왕국 때에 지켜질 장막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풍성한 포도를 거둬들인 후에 장막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그 땅에 들어와서 포도주를 거둬들인 후에 이 명절을 지키면서 과거 힘들고 어려웠던 광야 생활을 기억했을 것이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장막에 거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들은 현재의 축복을 더욱 감사했을 것이다. 이것은 천년왕국 때에도 마찬가지로 행해질 것이다. 이 장막절은 천년왕국 때에도 지켜질 것인데, 그때 이스라엘은 과거 포로되었고, 쫓겨다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하며 현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 축복은 온 이방 민족들에게도 함께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이방 민족들이 장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옴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남아 있는 자도 각기 그 왕, 만군의 주께 경배하러, 또 장막절을 지키려고 해마다 올라올 것이라(슼 14:16). 만일 그들 중 어떤 민족이라도 장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않는 민족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에게 하늘을 닫아버려 비를 내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슼 14:17). 비는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인데, 비를 멈추신다함은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을 멈추실 뿐만 아니라 재앙까지 내리실 것이다(슼 14:18). 바로 장막절을 지키지 않는 민족들을 향해 내리시는 저주인 것이다.
장막절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표현은 “엄숙한 날”(solemn day, 호 9:5), “엄숙한 명절”(solemn feast, 호 12:9), “면죄의 해의 엄숙함”(the solemnity of the year of release, 신 31:10) 등이다. 즉 “엄숙함”이 강조되는 명절이다. 느헤미야 8:17-18에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초막에 거하며 장막절을 지켰는데, 칠 일 동안 명절을 지키고 팔일째에는 엄숙한 집회로 모였다고 기록한다. 그들은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며 엄숙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70년 간의 포로생활을 기억하며 엄숙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은 재림하시는 주님 앞에서 엄숙해야 할 것이다. 사실 모세가 율법을 받은 후,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율법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여호수아 때(B.C. 1450년경) 이후로 느헤미야 때까지(B.C. 450년경) 약 1000년 동안 이 장막절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또한 앞으로 1000년 동안(천년왕국) 장막절이 지켜져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이 장막절이 재림과 연관되는 모습을 조금 더 보자. 장막절은 일곱째 달에 지켜진다(현대력으로는 9월). “7”이라는 숫자는 항상 안식, 또는 재림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일곱 번째 있을 때도 특별한 날이다. 매 일곱 번째 해는 땅이 쉬게 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천년의 단위로 나누면 일곱 번째 천년은 안식의 천년으로, “천년왕국”이라 불린다. 일곱 개의 날부터 일곱 개의 해까지 모든 일곱 체계들은 궁극적인 “일곱”, 즉 일곱 번째 천년에 대한 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장막절이 일곱째 달에 위치한다는 사실 또한 재림에 대한 모형이다.
태양을 위한 장막
좀더 직접적인 언급은 말라키 4:2과 시편 19:4-5에서 제시된다. 우리가 잘 알듯이 말라키 4:2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태양”이라고 불린다. 이것을 주님이 우리의 태양이다 하는 정도의 영적인 적용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모습을 시편 19:5에서는 태양은 신랑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는 강한 남자처럼 기뻐하는도다.라고 묘사한다. 이것 또한 시편 기자가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는 것 정도로 그쳐서도 안된다. (그렇게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교리적으로는 그 이상이라는 말이다.) 이 모습도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분은 “신랑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다고 묘사된다. 다시 말해서 어린 양의 혼인식을 마치고 지상에 내려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때 그분은 “강한 남자”처럼 기뻐한다고 한다. 그렇다. 재림하시는 주님은 강하고 능하신 팔로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고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다.
이때 그분에 대해서 “태양을 위한 장막”이라는 말이 묘사된다. 그들의 선율은 온 땅을 질러 뻗어 나가고, 그들의 말은 세상의 끝까지 다다랐으니, 그가 그들 가운데 태양을 위하여 장막을 세우셨도다(시 19:4). 그 열기가 가득 차고 휘황찬란한 태양을 위해 어떻게 장막을 세우신다는 말인가? 바로 그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깊이 있는 진리를 알지 못했겠지만, 산 위에서 태양처럼 빛나게 변형하신(마 17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장막을 짓겠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경을 목도한 베드로가 자기도 모르게 장막절을 연상한 것이다. 물론 베드로는 그때 장막을 지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태양을 위한 장막은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달에 지켜지는 명절들
이러한 사실들은 재림의 때가 장막절 기간이라는 사실을 예언적으로 분명히 알려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기간은 나팔절과 속죄일과 연결되는 커다란 기간이다. 7월 1일은 나팔절이고, 7월 10일은 대속죄일이며, 7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장막절이다. 일곱 번째 해가 재림과 연관되듯이, 장막절뿐 아니라 일곱째 달에 있는 이 세 개의 절기는 모두 재림과 연관된다. 나팔은 군대를 소집할 때 사용하는 악기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실 때 나팔을 사용하신다. 교회가 휴거될 때도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린다(살전 4:16). 그렇다고 나팔절이 교회의 휴거와 연관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팔이라고 다 같은 나팔은 아니며, 환란 중에 일곱 천사에 의해 불려지는 나팔이 교회의 휴거를 일으키는 나팔이 아닌 것처럼 나팔절의 나팔도 교회와 연관된 나팔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나팔절이 아니라 오순절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 나팔절도 누군가를 소집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환란성도들의 휴거에 대한 모형이다. 환란성도의 휴거는 재림 직전에 있을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과 연속선상에 등장하는 사건이다. 또한 역대기하 5:13에서는 장막절 축제 때에 나팔 소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있다. 나팔 부는 자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하나가 되어, 한 소리로 주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그들이 나팔과, 심벌즈와, 악기들과 함께 그들의 음성을 높여 주를 찬양하며, 말하기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자비는 영원하시도다.” 하였을 때, 전, 즉 주의 전이 구름으로 가득 차더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는 것에 대한 모형이다.
또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날인데, 이는 히브리서 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예표가 되어, 성도들의 죄를 영원히 제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나,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사역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초림 때 오신 것도 이방인들보다는 먼저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오셨다(마 1:21). 재림 때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완전하게 용서하실 것이다. 예레미야 31:31의 “새 언약”이 이것을 설명해주는데, 앞으로 재림 때 유대인들과 맺으실 새 언약 아래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실 것이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더불어 맺을 언약이 되리니, 그 날들 이후로 나는 내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면 그들은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말하기를 “주를 알라.”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모두가, 즉 그들 가운데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나를 알기 때문이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할 것이며,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렘 31:33,34). 그러므로 대속죄일도 재림과 연관되는 사건이다. 이러한 연속되는 절기 속에 장막절이 등장하는 것은 환란성도가 휴거되고 재림이 있게 되고 그후에 천년왕국이 펼쳐진다는 일련의 상황을 우리에게 모형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다.
참으로 장막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장소이기도 했고(“성막”과 연관될 때), 벗어버릴 우리의 육신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막에 관한 또 하나 중요한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임하셨던 장막을 알며, 또한 재림을 예표하는 장막절과, 천년왕국 때 그 절기가 중요하게 지켜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성경 속에서 더욱 구체화되는 주님의 재림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아침에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를 때마다 장막절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더 깊이 소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