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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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1월호>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로마서일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신약교회의 구원의 교리를 가장 확실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이 로마서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교리를 올바르게 다루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사실 이 교리는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마귀는 이 교리를 혼란케 함으로써 무지한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교지도자와 종교생활의 노예가 됨으로써 복음 본래의 빛이 가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마서 3:28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구원의 교리에 관한 한 마귀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첫째,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구원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시작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나 지위, 신분 또는 그 사람의 인간됨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양심에 비춰진 자기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인 평가로 자기 자신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고 있다. 자기 주위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고 있기에 적어도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이런 사람들은 죄의 실상을 깨닫고 있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로마서 1:29-32을 통해 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모든 불의, 음행, 사악, 탐욕, 악의로 가득 찼으며,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며, 수군거리는 자들이요, 비방하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요, 모욕을 주며, 교만하며, 자기 자랑만 하며, 악한 일들을 꾀하는 자들이요, 부모를 거역하며, 몰지각하며, 약속을 저버리며, 무정하며, 화해하지 아니하며, 무자비한 자들이라. 그들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이 같은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느니라.』 바로 이것이 인간의 죄의 실상이다. 32절의 말씀처럼 죄를 범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남들도 다 하는 건데 뭐,” “이 정도는 괜찮지”라는 말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양심은 분명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양심을 그들의 죄악된 본성에 팔아버리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 보라. 소돔과 고모라가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악했다고 생각하는가? 분명히 아닐 것이다. 분명히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서 멸망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것이 분명하다. 죄를 짓는 사람들이 서로를 옳다고 여겨주며 덮어주고 정당화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어느새 멸망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이 그때와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누가복음 17:28,29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지금은 단지 멸망의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뿐이지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시대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에 대한 결과이다. 인간에게는 죄의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 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죄는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와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며 불행하게 만든다. 누구든지 양심을 시뻘건 인두로 지진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볼 때, 죄로 얼룩진 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악한 것이 마음이다.”라고 말씀한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인간들이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양심까지도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인간이 지닌 죄의 본성과 실상을 깨닫기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성경을 통해 본 사람의 모습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이 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하는가?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는 그분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문제삼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론을 만들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려고 한다
로마서 1:19,20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 또 시편 14:1에서『어리석은 자가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가? 건전한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머리로는 충분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단지 그들은 마음으로 그것을 인정하기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로마서 1:28 말씀처럼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리 곳곳에 수없이 많은 차들이 다니는 것을 본다. 건전한 이성과 올바른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루에 수십, 수백 건의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반면, 우주의 운행은 어떤가? 우주는 태초 이래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보아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데, 만약 궤도에 오차가 있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지구는 초당 450m의 속도로 자전하면서 초당 27km라는 놀라운 속도로 공전하고 있지만 궤도 이탈은 전혀 없다. 과학자들은 만일 지구와 태양이 192km만 더 떨어져도 생물이 얼어죽게 되고 96km만 더 가까워져도 모두 타죽게 되고 말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정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우주만물을 관장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우주를 운행하고 계신 분이시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우주의 규모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이 거대한 우주를 오직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나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7:24,25에서『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분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기까지는 마치 나의 종교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 양 종교적 열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점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철야기도가, 나의 새벽기도가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던 것일까? 그분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행했던 종교생활은 나 자신에게 어떤 종교적인 위안을 주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2,3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나의 의를 세우려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교생활이 나의 죄 문제와 맞물렸을 때에 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것은 바로 신앙에 대한 회의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받은 구원의 대가가 얼마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소홀히 여기기 때문에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종교생활에 젖어드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형식화되면 복음의 능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게 된다. 만약 우리가 받은 구원의 대가가 얼마인지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달아 알 수만 있다면 종교생활에 목숨을 거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받은 구원의 대가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이 구원의 대가는 당신의 행위로 대체될 정도의 싸구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구원은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그 무서운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줄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즉 수천만 명의 사람이 죽는다 해도 한 사람의 혼도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구원은 창조주이시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신 그분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피흘려 죽어 주실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다면 당신이 받은 구원의 대가가 도대체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베드로전서 1:19에서 우리가 구속된 것은『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죄 없으신 그분의 피가 아니면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하시고 기도하셨다고 해서 그 구원의 대가가 지불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다고 해서 그 구원의 대가가 지불되는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으시고 돌에 맞고 채찍질 당하고 거짓된 고소를 당하며 또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았다고 해서 구원의 대가가 지불되는 것도 아니었다. 구원의 대가가 지불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분의 처참한 죽음, 즉 그분의 피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그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로부터 그 어떤 섬김도 필요로 하시지 않으시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하나님 자신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 중에 신음하고 계실 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자기 자신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죄로부터 또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이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당신의 생명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은 기꺼이 그렇게 하셨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말이다.
구원의 대가를 안다면 적어도 자신들의 더러운 의를 내세워서는 안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롬 10:4)고 증거하고 있다. 또『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갈 2:21)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종교생활 가운데 지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즉 과거와 현재의 죄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을 모든 죄까지도 이미 용서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에 내가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신앙생활은 종교생활로 바뀌고 그러한 열심을 통해 자신의 의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그 놀라운 사실들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더 이상의 종교생활은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바로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다. 자기 만족을 채우는 신앙생활에서 주님을 위한 생활로 바뀌게 된다. 비록 육신이 연약해서 쓰러질 때에라도 우리는 내게 베풀어 주신 그 사랑과 그 구원의 대가가 너무나도 크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7:31에 보면『하나님께서 친히 선정하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지 못했다면 걸레와 같은 인간의 의로 인해 멸망은 정해진 것이다. 인간의 행위로부터 비롯된 의는 바로 멸망의 보증수표이다.
당신이 여타 다른 선행이나 종교행위로 당신의 의를 내세우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아무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만 한다. 자, 지금 마음 가운데 대답해 보기 바란다. 믿음인가? 행위인가?『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롬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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