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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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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8월호>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8).
1. 교회와 휴거
휴거(rapture)라는 용어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운반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동사 라삐레(rapere)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또한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 가는 것을 묘사한다. 휴거라는 용어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는 아니지만 “삼위일체”처럼 명백한 성경적 교리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은 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구절들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5-17).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1-53). 이 휴거는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몸의 변화가 있은 뒤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신약 성도들을 언급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에서는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않은 구약성도들이 아니라 신약성도들의 휴거를 언급한다. 또한 고린도전서 15:23에서도 신약성도의 휴거에 대해서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구약성도들은 거듭나지도 않았으며, 신약성도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약속을 받지도 못했다(빌 3:20,21, 요일 3:1-3). 이 휴거의 유일한 참여자들은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공중에 임하실 때 교회인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 들림받을 것이다.
교회시대의 성도들 중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서 휴거되므로 한 번도 죽지 않을 것이다. 이 진리에 관해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마르다에게 설명하신 적이 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시니』(요 11:25-26). 한 번도 죽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소망이다.
2. 몸의 구속과 휴거
교회가 휴거되어 셋째 하늘에 올라갈 때,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완전한 구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혼은 이미 구속되었으나, 몸은 아직 구속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몸은 휴거 때에 구속될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 8:23). 그리스도인의 몸은 예수님께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값주고 사셨기에,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이제 예수님께서 오시면 “값 주고 사신 그 소유”(엡 1:14)를 구속하실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그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 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 3:20,21).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그들은 “타국인이요 순례자”(히 11:13)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부활한 몸과 변화된 몸은 33세 반의 남성의 몸이 된다(요일 3:1-4, 빌 3:21).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 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나 지옥으로 예정되었다는 극단적 칼빈주의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과 은혜의 복음을 믿음으로 누구나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거듭난 성도들이 휴거 때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모두 거부해 버린 이단이다.
그 날에 모든 사람이 들림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값주고 사신 보석만을 가져가실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밤에 도둑같이” 오실 것이며, 아무도 그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한다. 휴거는 “선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휴거는 성도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분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남편과 아내, 육신의 형제들과 자매들, 친구와 친구를 분리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눅 17:34-36).
3. 휴거와 재림
그러나 성경에서 설명하는 휴거와 반대되는 몇가지 잘못된 견해들이 있다. 첫째는 휴거와 재림을 동일시 하는 견해이다. 라킨이 설명했듯이 휴거는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오시는 것이고, 재림은 그의 신부인 교회와 함께 오는 것이다. “위하여”와 “함께”라는 차이를 구분할 줄 안다면 이 둘을 혼동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교회는 약혼한 처녀에 해당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키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처음 아담이 그의 아내를 맞이했듯이 마지막 아담도 그의 신부를 맞아야만 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라는 점은 이브가 아담의 “신부”가 되기 전에 아담의 “몸”이었던 사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휴거”는 이 시대와 세대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소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듣거나 구별할 수 없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개적이며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애곡하리라. 그대로 되리로다. 아멘』(계 1:7). 휴거 때 그 분은 도둑같이 오실 것이다. 도둑은 머무르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한 바만 이루면 떠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휴거 때에 오셔서 그 분의 성도들만 데리고 가신다. 주께서도 휴거 때에 사악한 자들과 수많은 무리의 이교도(이단)들을 남겨두고 떠나실 것이다.
솔로몬의 노래에도 휴거를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구절들이 등장한다(솔 2:8-13). 이 구절들은 교회의 휴거를 묘사하고 있으며 3장에 가면 곧이어 천년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위엄을 갖추고 등장하는 만왕의 왕의 모습이 나온다(솔 3:6,7,8). 이 구절들은 교회를 데리러 오시는 주님의 비밀스러운 나타남을 보여준다. 주님은 세상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에게만 은밀히 계시하신다. 아직 세상에 자신을 공개하실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심판하는 왕으로서 강림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만나러 공중에 오셔서 “창문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을 통해 몸을 내보이시는” 주님을 보게 된다.
4. 환란전 휴거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대환란 중간에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깨어 기다리는 성도들만이 대환란 전에 휴거되고 나머지는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은 신약성도의 휴거와는 상관없는 비성경적인 주장들이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환란후휴거설”, “환란중간 휴거설”, “부분휴거설”이라 하는데 성경은 “환란전휴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부분휴거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교회가 “한 몸”(고전 12:12-13)이라는 기본적인 교리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거듭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기에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져 일부는 환란에 참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모든 교회가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기다리며 고대하는 결과가 되므로 주님 자신의 가르침에 상반된다(마 24:42-44). 환란후휴거론자들의 성경적 근거들을 보면 그들은 기본적으로 대환란과 개인적인 고난과 환난들(살후 1:4, 요 16:33, 딤후 3:12)을 구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휴거가 본질적으로 환란 이전이며, 모든 성도가 이에 포함된다고 가르친다(롬 5:9, 살전 1:10).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대사들”을 환란가운데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그 이전에 모든 대사들을 본국으로 소환하실 것이다. 휴거가 환란전이라는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환란 전에, 불법자가 나타나기 전에 성령님께서 옮겨지신다는 사실이다(살후 2:7-8).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살전 1:10)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야곱의 고난(렘 30:7)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거듭난 성도들이 보호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롬 5:8, 살전 5:9, 계 3:10).
5. 휴거의 모형
성경의 모형적인 가르침은 교회가 환란 전에 휴거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는 형들에게 버림을 받은 후 이방인인 “그의 신부” 아스낫과 결혼하였다. 그 때는 기근이 있기 전으로서 기근은 형제들이 심판 받을 때를 가르키므로 대환란 기간을 의미한다. 즉 그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들인 유대인에 의해 배척을 받으신 때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형인 모세도 그의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은 후 이방인 신부를 맞아들였다. 이 때는 파라오에게 환란을 겪기 전이었다(출 2:23-25).
에녹은 주님께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신(요 11:25-26) 대표적인 모형이다. 에녹이 므두셀라가 태어난 후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주님은 에녹에게 그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태어나기 전에 지어진 이름에는 이삭, 마헬살랄하스바스, 로암미, 요시야, 예수 그리스도 등이 있다). 에녹은 그의 맏아들의 이름을 지은 후 기도실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그 이름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4000년을 앞질러(유 1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계시를 주셨을 것이다. 이 계시는 오는 세대에게 “노아의 날들”은 A.D.1900-2000년의 모습일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휴거될 성도”들의 모형인 에녹은 “대환란”의 모형인 대홍수 이전에 휴거되었다.
6. 휴거의 때
솔로몬의 노래 2장 11절과 12절에는 휴거의 시점이 나와 있다. 『보라,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쳐 사라졌으며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왔도다. 산 비둘기 소리가 우리의 땅에서 들리는도다.』 이 구절에 따르면 휴거의 때는 봄이다. 아마 오순절 때일 것이다. 신약시대의 시작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되었고, 구약의 율법 역시 오순절에 주어졌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라. 율법은 유대 종교력으로 셋째달에 주어졌는데 이때는 오늘날의 달력으로 5월과 6월 사이다. 출애굽기 19장 1절에 보면 이집트 땅에서 나온지 셋째 달이 되는 그 달 이스라엘 민족은 시내광야에 이르렀다. 10절부터 보면 주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성결케하고 셋째 날을 대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날 주님이 강림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로부터 율법을 받게될 이스라엘 민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놀고 있었다. 결국 율법을 받던 그 날 백성 중 삼천 명이 쓰러지는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출 32:28).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 때는 삼천 명이 구원받았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 것처럼 오순절 때 휴거와 함께 성령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솔로몬의 노래에도 휴거는 봄에 있을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재림이 장막절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아마 우리의 달력이 옳다면 9월에서 10월 사이일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 포도 넝쿨은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도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13절). 13절 역시 휴거의 시기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보게 된다. 알다시피 이 둘은 모두 이스라엘을 예표한다(마 24장, 사 5장). 따라서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그리고 포도가 좋은 향기를 내는 봄이 오면 휴거가 임박한 것이다. 흔히 휴거와 관련된 절기로 취급하는 “나팔절”(Feast of Trumpets)은 재림 직전의 휴거인 환란 성도의 휴거와 관련이 있다. 이 때에 이스라엘은 재집결할 것이다(마 24:31). 그 일은 재림 직전에 일어날 것이다. 이에 비해 교회의 휴거는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연관을 갖는다(신 16:16).
7. 우리의 소망
그리스도의 재림은 “복된 소망”이다. 디도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라고 했다.
“복된 소망”은 또한 “정결케 하는 소망”이다.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느니라』(요일 3:3). 즉 주님의 재림하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정결케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이 소망은 우리에게 “인내”를 심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들이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래 참나니 너희도 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움이라』(약 5:7-8). 이 소망은 우리를 깨어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너희는 모두 빛의 자녀들이며 낮의 자녀들이라.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자』(살전 5:4-6).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다면 행동에 주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는 의심스러운 장소에서 의심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길 원치 않으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길 원할 것이다. “복된 소망”은 우리가 이 세상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붙어 있도록 해 준다.
이 소망이 그 분이 오실 때 우리를 “수치”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 분 안에 거하라. 이는 그가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며, 그가 오실 때 그의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주님의 오심에 주의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잘 관리함으로서 우리의 청지기의 직분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신실한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그가 오실 때에 그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마 25: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