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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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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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5월호>

(이사야 40-53장)
이사야서는 주로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왕국의 위대함을 다루고 있는데, 그 관점은 하나같이 메시야, 즉 그들의 왕으로 인해 위대해지는 왕국이다. 그러니까 이사야의 예언에서는 메시야가 핵심이다. 이스라엘, 혹은 유다에 대해 책망하는 내용들도 실은 메시야이신 그들의 왕에 대한 열망과 예언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예언들은 앞부분에도 수없이 있었다. 그러다가 36-39장에서 히스키야왕 때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략한 역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이 내용은 열왕기하 18,19장의 내용과 일치한다), 그 선하고 위대한 왕 히스키야가 하나님만을 의뢰함으로 승리하는 내용은 메시야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안전한 모습을 보게 해준다. 사실상 산헤립의 대군을 무찌른 것은 히스키야의 병사들도 그의 전략들도 아닌, 한 천사의 능력이었다(사 37:36). 이 경우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적그리스도의 모형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히스키야는 곧이어 자기의 죽을 병의 회복을 축하하러 온 바빌론의 사신들에게 왕궁과 성전의 보물들을 공개하는 어리석음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바빌론으로 사로잡혀간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사 39:5 -7). 이는 아무리 선하고 위대할지라도, 인간 왕 아래에서는 진정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본래부터 죄인이고 능력이 부족하기에, 온전한 개혁도 이룰 수 없다. 히스키야의 경우, 선대부터 있어 왔던 유다의 뿌리깊은 죄악들을 근절시키며(왕하 18:4),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유월절을 지키는 등 율법의 회복을 실천했고(대하 39장), 필리스티아를 치는 등 이방 국가들을 제압하기도 한(왕하 18:8) 위대한 왕이었다. 하지만 왕이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백성들은 완전히 변하지 않았으며, 다음 왕 즉 므낫세 때의 극심한 악행으로 인해 유다는 다시금 죄에 빠지고 멸망을 확정받게 된다. 결국 인간의 개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들이 더욱더 메시야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스라엘에서 메시야에 대한 열망은 바빌론 포로 시대에야 비로소 등장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이사야서의 앞부분부터 보아왔건대, 그 기대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으며,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에서 극대화된다.
자, 이러한 기대를 안고 이사야서의 제2부로 넘어가도록 하자.

이사야 40장이 제2부라는 것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 일단 40장은 39장과 문맥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새로운 예언처럼 보인다. 특히 36-40장에서는 히스키야왕 때의 몇 가지 사건들을 다루다가, 40장에서는 그 문맥과 관계없는 새로운 선포가 등장한다. 마치 새로운 선지서의 1장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이 많았지만, 여기서부터는 메시야에 대해 구체적으로 또 더 많은 양들을 할애하여서 예언한다. 더욱이 이사야서가 총 66장이라는 것이 마치 성경 66권과 맞물려 있어서, 39장에서 일단락되는 것이 구약의 39권처럼 보이기도 한다. 40장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40:3)라고 말함으로써 왕의 선두주자 즉 침례인 요한에 대해 예언하는데, 마태복음 3장에서 바로 이 예언을 다룸으로써 침례인 요한의 사역을 등장시키는 것이, 꼭 이사야 40장이 신약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앞부분의 예언과 뒷부분의 예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심판과 회복을 말하고, 둘 다 메시야 왕국을 말하고, 둘 다 적그리스도의 멸망을 말한다. 앞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 예언으로, 뒷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낙관적 예언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예언의 형식과 전개 방식, 그리고 구체적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39장까지의 저자와 40장부터의 저자가 다르다는 이론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모독하는 이론이 아닐 수 없다.

이사야 40장은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의 하나님이 말하노라.『(40:1)는 예언으로 시작한다. 왜 위로하는가? 고난받았기 때문이다. 언제 고난받았는가? 일차적으로는 바빌론 포로 때이다. 그들의 고난이 끝났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40장 이후의 내용들에는 포로가 끝나고 본토로 귀환하는 내용들이 종종 들어 있다(44:28; 52:7). 이러한 내용들 때문에 학자들은 이사야 40장 이후가 포로기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이 예언을 기록한 이사야는 분명 히스키야 때의 이사야다. 그렇다면 본문은 분명히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얼마나 먼 미래에 대한 예언인가? 이 예언에는 그들의 고난이 전제되어 있다. 이 예언은 대환란 후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이 예언이 단순히 바빌론 포로 회복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명백해진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을 말하는 것은 분명 그로부터 7세기 후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하는 예언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탄생 때에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눅 2:25)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의 소망에서도 드러난다. 시므온은 이사야의 이 예언을 통해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예언이 초림에 한정되지 않는 것은, 이사야 40:2이 『...그녀의 싸움이 다 되었고, 그녀의 죄악이 용서받았나니 이는 그녀가 그녀의 모든 죄에 대하여 주의 손에서 배로 받았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의 탄생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처럼 위로를 받을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죄에 대한 책망을 다 받아서 용서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더 큰 죄악을 범했다. 더욱이 4절은 『모든 골짜기는 솟아오를 것이며, 모든 산과 작은 산은 낮아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재림 때에 있을 문자적인 지각 변동을 말하는 예언이다(슼 14:4).
결국 40장에서 시작되는 이 예언은 초림과 재림을 망라해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이 이후 예언에서는 메시야 자체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며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말하는 메시야는 어떤 분인가?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시며(40:21,22), 어떤 우상도 그분과 비길 수 없다(40:25). 모든 민족들을 가볍게 여기시고 그들을 주관하신다. 특히 우상들에 대해서는 여러 번에 걸쳐 말씀하시는데, 특히 44장은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실제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일부는 땔감으로, 일부는 음식 조리용으로, 일부는 우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절한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범한 죄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며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44: 7,8). 우상은 아무 일도 못한다. 특히 어떠한 예언도 할 수 없다(41:21-24). 우상들은 모두 헛것이며 바람이요 혼돈이다(41:29).
40:11에서는 목자가 양떼를 품에 안은 듯이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즉 그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되, 그 전능하심을 오직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사용하신다는 것, 이것이 그분의 위대하심에 대한 핵심이다. 그래서 그분을 의지하는 자들은 독수리가 날개치며 치솟는 힘을 얻을 것이다(40:29-31). 이 진리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만, 특별히 이스라엘, 대환란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분은 야곱의 왕이시다(41: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하시는데, 이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가 택한 야곱, 내 친구 아브라함의 씨야, 너는 나의 종이라『(41:8).
둘째, 그들의 메시야는 “하나님의 종”이다.
특히 이사야의 제2부격인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종종 언급된다. 그러나 이 종은 단순히 천대받는 노예가 아니라, 위대한 사역자의 모습이다. 마치 마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 바와 같다. 『내가 드높이는 나의 종을 보라. 나의 택한 자, 그 안에서 내 혼이 기뻐하는도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두었으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심판을 가져오리라『(42:1). 그러나 문맥은 이 “종”이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해 일하지 않고,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일하신다는 것이다. 6절에서는 『나 주가 의로 너를 불렀으니 내가 네 손을 붙들고 너를 지킬 것이며, 백성의 언약과 이방인들의 빛으로 너를 주어『라고 말씀한다. “이방인들의 빛”이라면 초림 때 이루신 온 세상의 구속 사역을 말한다. 그분의 이름을 신뢰하는 모든 이방인들은 차별없이 그분의 성도가 된다. 그러나 그분이 이방인들에게 행하시는 것이 “심판”임을 먼저 기억해 본다면, 그분의 사역이 우선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위한 사역임을 알 수 있다. 이방인의 빛에 대해서는 초림 때나 재림 때나 마찬가지이다. 6절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초림 때의 십자가 사건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종이라면,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종이다. 여기서 메시야는 그분의 백성과 연계된다. 『이제, 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분이 말하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43:1). 『오 야곱과 이스라엘아, 이 일들을 기억하라. 이는 네가 나의 종임이라...『(44:21).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말할 때, 그 문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관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때부터도 이 사실을 매우 강조하셨다. 율법의 목적이 그것이며, 명절 등 각종 규례들의 목적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범죄, 특별히 우상을 숭배함으로 그 관계성을 파기했다.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회복을 말씀하시면서 다시금 그 언약을 상기시키시고, 그 관계성을 정립하기 원하신다. 반면 메시야를 종이라 칭할 때는 그 사역을 강조하게 되는데, 문맥이 재림이다 보니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로 말하게 된다.
그래서 셋째, 그들의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분이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다. 『주께서 용사같이 나가시어 전사와 같이 투기를 일으키시고 부르짖으며, 정녕 포효하여 그의 원수들을 쳐서 승리하시리라『(사 42:13). 그러나 회복이라는 말은 단순히 그 민족의 정치적 회복만을 말하지 않는다. 항상 정치적 회복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영적 회복이다. 영적 회복을 이루려면 그들이 하나님 대신 신뢰했던 모든 우상들을 끊어 버려야 한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하게 책망하실 것이다. 『그들이 돌아서게 되며 크게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새긴 형상을 신뢰하고 부어 만든 형상에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의 신들이라.” 하였음이라『(42:17). 『그러므로 주께서 그의 성난 분노와 전쟁의 위력을 야곱 위에 부으셨으며, 그의 주위에 불을 붙이셨으나...『(42:25).
그러나 그들의 죄에 대해 심판을 다 받게 되면, 즉 “그녀의 모든 죄에 대하여 주의 손에서 배로 받게” 되면(40:2), 메시야께서는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메시야께서는 사방에 흩어진 자들을 불러 모을 것이며(43:2,6,9; 49:11,12), 이스라엘을 번성케 할 것이다(44:3). 그때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돌아오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45:1). [이 경우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이 유다를 귀환시키는 것을 예언하면서 그를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메시야에 대한 예표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레스는 실제로 그 일을 했고, 이 이름의 언급으로 인해 이사야 45장은 포로 귀환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공격받기도 하지만, 바로 이것이 예언의 확실성이며 성경의 영감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게 굴복할 것이며(45:14), 바빌론 같은 경우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47장). 이 또한 예언의 이중 적용을 보여 주는데, 일차적으로는 코레스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것이요, 다음으로는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와 같이 신비의 바빌론이 멸망하는 것이다. 47:5은 바빌론이 “왕국들의 귀부인”이라고 불렸다고 했는데, 이는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창녀, 땅의 왕들과 음행한 창녀(계 17:2,3), 스스로를 여왕이라고 부른 그 창녀(계 18:7)를 연상하게 한다.
48장부터는 메시야, 바로 이스라엘의 왕께서 그 백성을 회복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반복적으로 예언한다. (이사야는 반복적인 예언이 많은 책이다.) 그분은 창조주시라는 것(48:12,13), 우상들을 버리라는 것(48:5), 이스라엘을 고난 가운데 연단시키신다는 것(48:10), 그분이 이스라엘의 구속주요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48:17) 등이다. 또 그분은 이스라엘을 풍부하게 먹이실 것이요(49:10), 먼 땅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49:12), 그들이 돌아올 때 그 땅은 매우 번성한다는 것(49:19)도 강조된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온전하여질 것이며(52:1), 완전히 구속될 것이요(52:2,3),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것이다(52:7).
넷째, 그러나 메시야는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먼저 고난을 당하실 것이다.
이사야 53장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멸시받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질고에 익숙한 사람이라『(53:3). 우리는 복음서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거부당하는 모습을 수없이 본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53:5).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한 속죄가 이처럼 강렬하게 묘사된 구절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오르셨으며(53:6), 도살장의 양처럼 묵묵히 죽음을 택하셨다(53:7).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적 죽음으로 인하여 유대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의 왕으로서 그 찬란한 왕국을 이루어가는 이 문맥 속에 갑자기 그분의 고난이 왜 이처럼 자세히 다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 십자가 즉 고난이 없으면 면류관 즉 영광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고난을 받으셔야 했다. 사실 구약의 예언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왕이 되셔야 했다. 실제로 초림 때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스스로를 나타내셨고, 왕으로서의 표적들도 행하셨다. 그러나 왕이 되어 이 땅을 통치하시려면 그 전에 먼저 인류의 뿌리깊은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다. 그것은 바로 죄와 죽음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그분께서 친히 죽으시고 그 죽음을 이겨야만 해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메시야께서는 영광 이전에 고난을 택하신 것이고, 반드시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기에, 이스라엘의 회복과 왕국을 다루는 이 문맥 가운데에 그분의 고난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신약 교리이다. 10,11절은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구원받은 성도들, 즉 그분의 몸인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탄생되는 새로운 세대(시 22:30,31), 즉 새로운 백성이기에 “자신의 씨”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구약적 관점으로 말해서, 이 예언은 하나님의 신정국가를 세워 나가는 과정 가운데 있는 예언이며, 다음 장들에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 그리고 메시야로 인한 회복과 왕국의 영광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사야서의 본 단락(40-53장)에서 메시야의 여러 가지 사역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신 메시야의 위대하심을 보게 된다. 이 예언 그대로 그분께서는 왕국을 세우실 것이고, 그 왕국은 위대하고 찬란한 왕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그분의 백성이 된 우리들 또한 이 계획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에 감사하며, 우리 모두는 이 예언이 어서 빨리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 다음 호에 계속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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