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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의 행동 규범 1 - 성별의 규례(레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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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0월호>
레위기 18장부터는 레위기의 후반부로 들어간다. 전반부에서 의식법을 주로 말했다면 후반부에서는 도덕법을 강조한다. 즉 전반부에서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성, 후반부에서는 백성들 상호 간의 관계성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후반부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백성들 상호 간의 의무와 법도를 말할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행동 규범임이 강조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성을 전제로 놓고, 그러한 특별한 백성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의무에 대해서도 신실하라는 말씀이다. 전반부에서 제시된 바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성이 구체적 행동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이 후반부에서는 이방인들이 하는 행동들을 하지 말라는 말씀들이 강조되는데, 특히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강조되며, 19장에서는 십계명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제사장들의 성별을 말하는 21-22장에서도 전반부에서는 희생제를 드리기 위해 성별해야 함을 말한다면, 이 후반부에서는 그 제사장들이 모든 백성들 가운데 모범적으로 삶의 성별을 보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지는 모든 규례들도 이방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규례이다.
1. 행동 규범의 전제 - 성별
율법을 도덕법과 의식법으로 구분해 말한다면, 이러한 구분은 율법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보편성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특수성은 특별한 사람들, 즉 이스라엘 혹은 더 특별하게 레위인이나 제사장에게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특수성은 일반적으로 의식법과 연관되어 설명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율법의 특수성은 의식법에 한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는 도덕법에서도 무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살인, 간음, 폭력 같은 죄들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 세계에서도 죄악이다. 세상 각국은 이러한 죄들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도덕법이라 한다. 하지만 구약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법들은 이방인들의 도덕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도덕법들도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방인들로부터 성별되는 관점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율법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방인들은 미개하기보다는 극악무도한 죄인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하기 때문에만 죄인들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덕에 있어서도 죄인들이다. 이방 세계에도 공식적으로는 도덕법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풍습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도 양심을 주시어 그 사회들을 유지하는 법을 만들게 하셨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없이 사는 마귀의 자녀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신을 따른 그들의 행동 양식, 즉 풍습과 문화는 지극히 악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도덕법을 주심에 있어서 이방인으로부터 성별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법의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성별”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레위기 18:2,3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너희가 거하던 이집트 땅의 행실을 따라 행하지 말지니라. 또한 내가 너희를 인도하는 카나안 땅의 행실을 따라서 행하지 말며 또 그들의 율례대로 행하지도 말지니라.』
레위기 18장 이후는 백성들 상호 간의 행동 규범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규범들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18장이 시작되는 이 구절들을 통해 그들이 독특한 백성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신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구별된 백성들이다. 이 모든 말씀들을 하심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부터 하신다. 즉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성을 상기시키시는 것이다. 그들이 “독특한 보물”(출 19:5)이 된 것은 하나님과 맺은 한 “언약”(율법) 때문이다. 이 언약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율법을 대표하고 있는 십계명에서도 첫 두 계명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율법 조항들의 근간이 되는 계명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도 하나님과 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교회) 사이의 한 “관계성”을 보여 준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 이를 “새 언약”(New Testament)이라 한다. 이 관계는 이스라엘이 가졌던 관계와는 다르며, 더 위대하다. 우리는 백성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자녀가 되었고, 몸이 되었고, 신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방인들로부터 성별하여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이 된다는 점에서는 이스라엘과 동일하다(벧전 2:9, 출 19:5). 또한 그것이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한 성별의 정신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주어진 이 언약에 따라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다. 그런데 이들의 환경은 너무도 열악했다. 현재(레위기 당시) 광야에서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어떠한 걸림돌도 없다. 비록 내적인 죄성이 있고 또 광야라는 고생의 장소에 있기는 하지만, 이 관계성을 깰 만한 어떠한 대적도 없다.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있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보며 살았었다. 하지만 그 땅에 들어가서는 다르다. 그 땅, 즉 카나안 땅은 완전히 악한 땅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너무 나쁘다. 자연 환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환경이 나쁘다. 자연 환경이야 카나안 땅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그 땅의 열매는 풍성하다(민 13:27). 하지만 그 백성들은 악했다. 민수기 13장에서 카나안 땅을 탐지한 정탐꾼들은 그 땅의 거민들이 무서운 거인들이라 보고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거민들에 대해 더 본질적인 면을 강조하신다. 그것은 그들이 악인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8:2에서 이스라엘에게 이 악한 환경에 대해서 두 개의 상황을 들어 경고하신다.
첫째는 그들이 거했던 이집트 땅에서의 행실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이방 땅에서 죄 가운데 살았었다. 우상들을 섬기면서 살았었다.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 땅의 죄와 어우러져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32장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으로 증명된다. 그들은 그때 이집트에서 본 것대로 행했던 것이다.
둘째는 앞으로 들어갈 카나안 땅의 행실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들어갈 땅 역시 죄짓기에 충분한 땅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잠시 세상을 잊었지만, 카나안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과거 그들이 나온 세상을 다시금 기억할 것이다. 잠시 죄에서 피한 자가 다시 죄의 환경으로 들어가면 더 악해지듯이 이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환경을 철저히 차단시키시는 것이다. 이집트라는 세상에서는 “탈출”하면 되었지만 카나안이라는 세상은 그들이 정착해야 할 약속의 땅이므로 더 이상 탈출로만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땅은 “정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왜 정복해야 하는가? 그 땅이 너무도 극악무도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악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18:6 이하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카나안 거민들은 음행하는 민족이었다. 더욱이 자기 자식들을 우상에게 불태워 제물로 바치는 민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오염으로부터 이 백성을 철저히 보호하시기 원했던 것이다.
2. 간음에 대한 금지
18:6 이하는 간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시며 그 행위들을 금지하신다. 20장도 간음에 대해 언급하는 말씀이다.
레위기 제2부의 시작, 즉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행동 규정을 다루시는 말씀의 첫부분이 음행에 관한 법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이 범죄가 카나안 땅에 만연된 범죄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범죄는 흔히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사람들이 빈번히 행함에도 불구하고 그 죄의식을 쉽게 잊어버리는 범죄이다. 음행은 카나안 땅의 풍습과 문화였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문학과 음악과 예술이라는 이 세상의 문화들은 이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그것이 세상에서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있다. 음행은 어찌보면 세상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주 강력하게 이 죄에 대해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별을 다루는 본문에서 성적 범죄를 가장 먼저 취급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하겠다.
그런데 사실 본문에 제시된 성범죄는 육신의 정욕에 따른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6-18절에서는 근친상간의 다양한 경우를 금지하신다. 19-23절에서는 기타 부정한 성관계를 금지하신다. 이웃의 아내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20절), 동성연애와(22절) 수간도(23절) 금한다. 이러한 죄들은 극악무도한 죄이다. 단순한 인간의 육신적 욕정의 죄를 뛰어넘는 사탄적인 행위인 것이다. 레위기 18장의 이러한 경고들이 오늘날에 특히 공감되는 것은 오늘날 이러한 죄들이 점점 증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연애는 당시 카나안 땅 안에서나 밖에서 성행하였다(창 19:5, 판 19:3, 롬 1:27, 고전 6:9).
오늘날 동성연애처럼 단기간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죄악도 드물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연애는 아주 치욕스러운 짓으로 생각되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와 여론의 도움(?)으로 이 죄악은 더 이상 죄가 아니라 하나의 취향 혹은 성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양심이 화인맞은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다. 그래도 전에는 양심에 심겨진 하나님의 법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경의 도덕적인 면들은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이 송두리째 거절당하고 있다. 죄들을 지적해도 그것을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것은 이 세상이 카나안 땅처럼 멸망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21절은 조금 특이하다. 간음을 금지하는 문맥 가운데에 몰렉 신에게 희생제사로 바치는 죄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 너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지니라. 나는 주니라』(21절). 여기서 “몰렉에게 주어”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몰렉에게 준다는 것을 이방 신에게 헌신케 하는 것, 즉 카나안 종교의 제사장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이 경고는 단순히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씀일 뿐이다. 그들은 아무리 무지한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자기 자식을 희생제사로 불태워 죽일 수 있었겠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이 이방인들은 무지하다기보다는 극악무도한 사람들이었다. 본문의 “불을 통과하게”라는 말씀이 이 구절을 확실히 해석해 준다. 이 말씀은 분명 인신제사에 대한 경고이다. 고대의 사악한 종교들 중에는 이러한 희생의식을 치르는 종교들이 종종 있었다. 이집트나 바빌론에도 인신제사의 풍습이 있었다. 고대 잉카에서는 사람을 죽여 심장을 바치는 의식이 매일 행해졌다. 아프리카의 부두교나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교에서도 사람을 희생제사로 드렸었다. 카나안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경우 희생제물을 몰래 잡아오거나 전쟁 포로 중에서 선택했지만, 어떤 경우는 부모가 자식을 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희생제사로 드리겠냐만, 이런 일들은 대부분 최면과 주술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제사장들의 주문 소리와 북소리도 이 의식에 한몫한다.
그런데 왜 이 내용이 간음에 대한 금지 규정 한가운데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몰렉을 숭배하는 이 죄악 자체가 큰 음행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음행과 우상 숭배를 연계해서 경고하시는 것이다. 호세아 4:12-14에서는 이 두 죄악, 즉 음행과 우상 숭배가 한 영(“음행의 영”)에 의해 이끌림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본문 22,23절을 보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성적 범죄를 경고하고 있다. 이런 문맥에서 보면 21절도 그 땅에서 행해지는 극악무도한 “영적 음행”을 경고하시는 것이며, 결국 전반적으로 음행에 대해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적 음행은 실제적인 음행으로 이어졌다. 고대 신전에서 행해진 종교적 음행은 당시에 만연된 풍습이었다. 특히 카나안 종교는 농경사회의 풍요를 바라는 종교로서 그 풍요에 관한 의식에 여사제들의 역할이 컸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종교적 음행을 낳게 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종교와 풍습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레위기 18장에 나오는 이러한 성적 범죄는 카나안 종교에서 나온 문화적 풍습을 반영한 것이고, 그 종교의 단면이 또한 인신제사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문화는 지극히 사탄적인 것이었으며, 오늘날의 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24절부터는 이러한 죄를 지을 경우 받을 형벌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땅이 그들을 “토해 내는 것”이다(28절). 즉 그들은 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것은 또한 그 이방인들이 바로 이러한 죄들로 인해 이제 토해 낸 바 된다는 것을 말한다. 24,25절은 『이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민족들이 이런 모든 일들로 더럽혀졌으며 그 땅도 더럽혀졌음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일찍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왜 당시에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당시에는 아직 그 땅의 족속들이 그토록 극악무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창 15:16).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죄악이 다 찼다. 그들은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극도의 죄인들이다. 18장에서 제시한 이러한 범죄가 만연해 있는 땅이었다. 소돔은 바로 그래서 멸망했다. 이제 이들 카나안 거민들이 멸망해야 할 차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백성이 완전한 성별을 이루기 원하셨다.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죄를 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습”도 따르지 말라고 명령받는다(30절). 관습은 그 사회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문화다. 때로는 그 문화가 직접적인 죄의 행위가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 관습의 유래를 따라 올라가면 그 뿌리가 이와 같은 죄악임이 밝혀진다.
오늘날 관습이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온갖 이교도적인 풍습들을 보라. 레위기에서 이스라엘은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정결하게 자신들을 지켜야 했다. 그렇지 않을 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받은 땅은 더럽혀지게 되고, 결국은 그 땅이 그들을 토해 내게 될 것이다. 실제로 향후 이스라엘은 이러한 죄들을 짓게 되었다. 그들은 동성연애를 비롯한 수많은 음행들과 우상 숭배를 자행했다. 열왕기하 16:3에서는 유다 왕 아하스도 자기 자식을 불을 통과하게 했었다. 이러한 모든 죄들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는 그 땅에서 토해 냄을 당하게 되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