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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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는 언제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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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1월호>

오늘날 교회들이 완전히 배교했다는 사실은 설교 강단에서 “성경의 핵심 주제”를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알 수 있다. 성경의 주제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이나 “긍정의 힘”이 아니다.

또한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아니며, “스트레스와 긴장 해소법,”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종교적인 의식들,” “인류의 화평과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등도 아니다. 성경의 주제는 단연 “하나님의 왕국”(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재림)을 통해 완전히 성취된다.

피터 럭크만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죄인들을 위해 죽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전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날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히 “재앙의 날”이었다. 『제구시경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이라』(마 27:46). 생각해 보라! 자기 아들이 버림받는 모습을 보면서 환호하고 기뻐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아들을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를 고난에 두셨도다.』(사 53:10 a)라는 말씀은 진리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구속 사역을 통해 장차 태어날 그분의 “씨”인 “영적인 백성,” 곧 “교회”로 인해 기쁘셨던 것이지,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죽음 자체가 기쁘셨던 것은 아니다.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사 53:10 b).

반면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시는 날은 자기 아들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이 땅에 세워질 다윗의 보좌에 앉아 온 세상을 유업으로 받으시고 심판하시고 통치하시는 “재림”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마땅히 받으셔야 할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렇듯 “재림”이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에, 성경은 초림 당시의 “갈보리 십자가 사건”보다 장차 재림 때 이 땅에서 이루어질 “왕국에서의 통치”를 설명하는 데 열 배 이상 많은 구절을 할애한다.

특히 성경은 그날이 무척 가깝다고 말씀한다. 『너희도 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주의 오심[재림]이 가까움이라』(약 5:8). 이런 사실은 재림에 관한 여러 가지 『시대의 표적들』(마 16: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런 “재림”(지상 재림)에 관한 표적들을 볼 때 “휴거(공중 재림)의 시기가 무척 가깝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성경에는 “재림에 관한 15가지 대표적인 표적들”이 등장한다.

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영토로 돌아오고(사 11:10-12, 겔 20:34), 그 귀환은 “동쪽”(터키, 예멘, 이라크, 이란, 중국), “서쪽”(유럽, 나치의 홀로코스트), “북쪽”(러시아), “남쪽”(에티오피아), “땅끝”(미국, 캐나다) 순서로 이루어진다.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내가 네 씨를 동쪽으로부터 데려오고 서쪽으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을 향하여 말하기를 “포기하라.” 할 것이며, 남쪽을 향하여 말하기를 “감금하지 말라.” 하리라. 내 아들들을 먼 곳으로부터, 내 딸들을 땅 끝들로부터 데려오라』(사 43:5,6).

② 돌아온 백성들이 이스라엘 영토에서 땅을 사면서(렘 32:44)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된다.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으리요?... 땅이 하루에 생겨날 수 있으며,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그 자녀들을 낳았도다』(사 66:8). 물론 이 구절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은 “재림 때”다.

③ 순수한 언어인 “히브리어”가 회복된다(슾 3:9). 실제로 1922년 11월 29일은 히브리어가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가 된 날이었다. 이를 위해 가장 공헌을 많이 한 “벤 예후다”(Ben Yehuda, 1857-1922)는 당시에 히브리어의 부활을 꿈꾸며 이렇게 말했다. “조상의 ‘땅’을 회복하지 않으면 유대인이 될 수 없다. 조상의 ‘언어’를 회복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국가가 될 수 없다. 러시아어와 영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 등으로 어떻게 국가 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④ 표준적인 이스라엘의 공식 화폐로 “세켈”이 부활하고(1980년), 이스라엘의 옛 도성들이 재건되고 옛 지명들이 되살아난다(사 58:12, 겔 36:10,36-38).

⑤ 완전한 “관개”가 이루어지고(사 58:11), 해마다 강수량이 증가되면서 땅의 소산이 증가한다(사 27:6).

⑥ 숲에 나무들이 자라나고(사 41:19,20), 독수리를 위시한 맹금류가 15세기 만에 다시 둥지를 튼다. 이스라엘 공군은 새들이 짝짓기하는 계절에 그들의 서식지를 피해 훈련한다.

⑦ 야생 표범들이 엔게디 주변에 나타나고, 떼로 몰려다니는 야생 염소들이 발견된다.

⑧ 약속의 땅을 지배하기 위한 전쟁들이 일어난다(마 24:6,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 전쟁,” 1956년의 “수에즈 전쟁,” 1967년의 “6일 전쟁,”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 등).

⑨ 성전이 재건되는데(살후 2:4, 계 11:1,2), 이를 위한 제사장들의 의복들과 그릇들이 이미 만들어졌으며 필요한 돌들도 채석해 놓은 상태다.

⑩ 팔레스타인 사람들 및 아랍인들과 함께 거짓 평화 조약들을 맺는데, 특히 대환란 기간에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언약을 맺게 된다(사 28:15, 단 9:27; 11:27).

⑪ 교회는 배교하게 된다(딤전 4:1-3, 딤후 3:1-13; 4:3,4, 벧후 2:1-3).

⑫ 국제경찰국가가 세워진다(계 13:7, 단 7:19-21).

⑬ 사탄적인 성경 번역본들이 출현한다(렘 23:1-40, 고후 2:17, 벧후 3:16).

⑭ 국제연합(UN)의 파멸이 다가온다(슾 3:8, 마 13:40).

⑮ “무화과나무”에 싹이 난다(마 24:32-34, 막 13:28,29, 눅 21:29-32).

이상의 “표적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긴 해도(고전 1:22),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표적들을 잘 분별해야 한다(살전 5:1-11). 특히 마지막 열다섯 번째 표적과 관련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주목해야 한다. 『무화과나무의 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보면 그 일이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리라』(마 24:32-34).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사역 마지막 주간의 월요일에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적이 있다(마 21:19). 그 결과 무화과나무는 뿌리로부터 말라 버렸다(막 11:20,21). 뿌리로부터 말라 버린 나무는 소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기에, 이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완전히 저주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뿌리째 말라 버린 이스라엘이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서 회복되기 시작했으니, 곧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그들의 본토에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것”(마 24:34)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을 내는 것을 본 세대를 가리키는데,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독립을 본 세대”인 것이다. 한편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 즉 “대환란과 재림에 관한 모든 표적”(마 24:4-31)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으니, “교회의 휴거”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다시 말해 “1948년을 기점으로 하는 한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세대”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만 “한 세대”를 몇 년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만 남아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가 된 1948년을 기점으로 하여 “몇 년”까지를 한 세대로 볼 것인가에 따라 휴거와 재림의 시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선 성경은 “교회의 휴거”가 일어나는 시기를 “늦은 봄”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이[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일러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신부인 교회]야, 일어나 떠나자[휴거]. 보라,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쳐 사라졌으며,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왔도다. 산비둘기의 소리가 우리의 땅에서 들리는도다.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 포도 넝쿨은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도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 하였도다』(솔 2:10-13). 신부인 교회가 이 땅을 떠나게 될 “휴거의 시기”는 “겨울이 지났기에”(11절) 12,1,2월이 아니고, “비도 그쳐 사라졌기에”(11절) 3,4월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른 비”는 9,10월에 내리고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기 때문이다. 한편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왔도다.』(12절)라는 말씀은 휴거의 시기가 “5월”임을 보여 주고,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13절)라는 말씀은 앞서 언급한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잘 어울린다. 따라서 휴거의 시기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늦은 봄”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보면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사이”에 해당하고, 이스라엘의 절기로 보면 “오순절”에 해당한다. 참고로 올해의 오순절은 2021년 5월 17일로서 이미 지나갔다.

한편 성경에서 “한 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은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한 세대를 “33년”으로 볼 수 있다. 『그가 감옥과 재판에서 끌려갔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선포하리요? 이는 그가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음이요, 그가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하여 형벌을 받았음이라』(사 53:8). 『그의 세대』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기간은 33년 반이므로 이 연수를 한 세대로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재림의 시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한 해인 1948년에 33년을 더하면 나온다. 즉 1981년인데 이 연도는 이미 지나갔다.

두 번째로는 “42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 세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십사 대요,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잡혀간 때까지 십사 대요, 바빌론으로 잡혀간 때부터 그리스도까지 십사 대라』(마 1:17).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의 전체 “연수”를 전체 “세대”로 나누면 “한 세대”에 해당하는 기간이 나오는데 약 42년이다. 이 연수를 1948년에 더하면 재림의 시기는 1990년이 된다. 하지만 이 연도 역시 지나가 버렸다.

또한 한 세대는 “70년”이나 “80년”으로도 볼 수도 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10). 이 두 연수를 1948년에 더하면 각각 2018년과 2028년이 나오는데, 이 중에서 2018년은 이미 지나갔고, 2028년은 현시점에서 7년이 더 남아 있다. 그런데 2028년은 “재림”이 일어날 연도이므로, “휴거”가 일어나는 시기는 여기에서 7년을 빼야 한다. 왜냐하면 휴거와 재림 사이에 위치한 “환란 시대”의 전체 기간은 “7년”(단 9:27)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할 때 “휴거의 시기”는 올해인 2021년이 된다. 그렇다면 올해 우리는 휴거가 되는 것인가?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올해는 교회의 휴거와 연관된 절기인 “오순절”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한 세대를 “100년”으로도 볼 수 있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분명히 알지니 네 씨가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타국인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요, 그들이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겠고...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 하시니라』(창 15:13,16). 여기서는 『사백 년』(13절)을 『사 대』(16절)로 보았으므로 한 세대는 100년이다. 이에 1948년에서 100년을 더하면 2048년이 재림의 시기가 되고, 휴거의 시기는 역시 7년을 빼면 되니까, 2041년이 휴거가 일어날 가장 유력한 시기가 된다. 만일 2041년이 옳다면, 우리가 휴거될 날은 아직도 20여 년이 더 남아 있게 된다. 아직 멀었으니 대충 너저분하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휴거와 재림의 시기를 정하려 하는 자들의 질주에 “제동”을 거신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나니, 심지어는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나의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단언하건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휴거와 재림의 『날과 시간』을 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성경을 근거로 그 시기를 가늠해 볼 뿐 “확정 짓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가 그 연도를 얼추 계산해 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계절인지 그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해도 결코 그 날과 시간을 확정할 수 없는데, 여기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나니』(마 24:36)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실 때 어떤 연수나 날들을 의도적으로 계산에 넣지 않으신 것처럼(왕상 6:1, 욥 3:6 등), 재림과 관련해서도 계산에 넣지 않으시는 연수와 날들이 있을 수 있다.

넷째, 환란 기간의 날들은 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마 24:22). 환란 기간이 7년에서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재림의 시기를 정확히 안다 해도 “휴거의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섯째,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지체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누군가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하시면서 그 시기를 조율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달력이 아닌 “하나님의 달력과 시간표상”에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운 모든 예언과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가 정확하게 들어맞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렇듯 우리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라도” 오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시기가 꼭 “봄”이 아니더라도, “여름”이나 “가을” 또는 “겨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날과 시간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이 무척 임박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척 임박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휴거나 재림의 시기를 성경적으로 공부하고 추정해 보는 현실적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재림의 날짜와 시간을 함부로 확정해 버리는 이단들의 미혹과 속임수에 속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재림의 임박성을 인지하고 주님의 재림을 더욱 사모하는 가운데 깨어 있기 위해서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다루는 마태복음 24장은 이어지는 문맥에서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라는 명령과 함께 마무리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떤 시간에 너희 주께서 오실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42,44절).

마태복음 24장은 문맥상 교리적으로 “유대인 환란 성도들”에게 적용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셔서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을 고대하는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부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는 두 대상 모두 지상에서 “세상의 빛”이 없는 “밤”의 기간을 보내고 있고, 또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과 시간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거듭난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권면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때를 아노니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로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몸의 구속이 이루어질 휴거]이 더 가까워졌음이라.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롬 13:11-14).

동이 트기 직전에는 칠흑 같은 어두움이 임한다. 하지만 찬란한 아침을 기대하며 위로부터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깊은 잠에 빠져 살지 않는다. 오히려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으로 무장한다. 이는 우리 모두 “빛의 자녀들”이자 “낮의 자녀들”로서 밤이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살전 5:5).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고대하는 그리스도인은 흥청거리지 않는다. 음란하게 행하지도 않는다. 탐욕을 추구함으로써 방탕하게 살지도 않는다. 온갖 자만과 교만으로 다투거나 시기하지도 않는다. 오직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유지함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강렬한 영광의 빛 한가운데 서서 죄로부터 온전히 성별한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TV에 중독되어 하나님과 성경과 기도와 가족과 섬김 등을 잊어버린 성도는 지금 당장 TV 전원 연결 코드를 뽑아 버려야 한다. 아침에 성경 대신 신문만 보는 성도는 신문을 멀리 던져 버리거나 구독을 당장 중단하는 것이 낫다. 과소비가 심한 성도는 아예 신용카드를 잘라 버려야 한다. 같이 어울리기만 해도 죄를 짓는 친구들을 둔 성도라면 그들과의 만남을 피하는 것이 좋다. 정욕을 채우는 데 필요한 모든 환경과 계획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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