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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와 서원의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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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8월호>
(민수기 28-30장)민수기 28-30장은 광야 생활의 역사적 흐름은 잠시 멈추고 희생제와 서원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신다. 항상 그렇듯이 민수기에서 율법의 규례들을 말할 때면, 레위기의 규례를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서술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주의 명절들에 드리는 제물들이다. 주의 명절들 자체는 레위기 23장에서 말씀하셨고, 희생제물 자체는 레위기 1-7장에서 말씀하셨다. 여기서는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
1. 명절들에 드리는 희생제의 규례(28-29장)
명절들에 드리는 제물은 개인적인 범죄나 서원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를 위한 것이다. 또한 번제와 음식제와 속죄제가 드려지나, 번제가 중심이 된다. 레위기 1장에 따르면 번제는 각뜬 몸통, 머리, 기름, 내장, 다리 등 모두를 불태우는 희생제물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드려지셨음을 상징하는 것임과 동시에 성도들이 전적으로 드려져야 함(헌신)도 상징한다. 여기 민수기에서 번제는 해당 날에 따라 그 내용물이 다르다.
1) 매일 드리는 번제 (28:1-8)
이스라엘은 “점 없는 일 년 된 어린양 두 마리를 날마다” 계속 번제로 드려야 한다(3절). 한 마리는 아침에, 또 한 마리는 저녁에 드린다. 이것은 이스라엘 개개인이 매일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성막에서 제사장들의 일상 업무가 될 것이다. 제사장들은 안식일뿐 아니라 매일 경배를 드린다. 이것은 우리의 삶 또한 주일만이 아니라 매일 경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번제는 반드시 음식제물과 함께 드리게 된다. 고운 가루 1/10에바에 찧은 기름 1/4힌을 섞어서 드린다(5절). 거기다 1/4힌의 포도주를 “술붓는 제사”로 드린다(7절). 이는 15:4-5에서 말씀하신 규례와 동일하다. 이렇듯 음식제사와 술붓는 제사는 단독으로 드리지 않고 번제와 함께 드린다. 그래서 희생제(sacrifice)라고 불린다. 음식제사가 단독으로 드려진다면 피 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희생”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온전한 번제를 드릴 때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8절, 레 1:13). 그리스도인들 역시 온전히 자신을 드릴 때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2) 안식일에 드리는 번제 (28:9-10)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의 두 배를 드린다. 즉 어린양도 두 마리, 고운 가루와 술제물도 두 배다. 안식일은 특별히 구별된 날로서, 더 많이 드린다. 일반적 경배, 일반적 헌신보다 좀 더 특별하게 드려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평상시에 주님께 헌신하고 경배의 삶을 산다고 해도, 특별하게 성도들이 모여 경배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리 날과 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롬 14:6), 주일에 모여 경배하는 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경배하는 것을 원하신다(히 10:25). 물론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 헌신과 구별되는 더 특별한 경배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3) 매월 초(“새 달”)에 드리는 제물 (28:11-15)
매월 첫날은 더 특별한 날로서, 더 많은 번제물이 드려진다. 어린 수송아지 2마리, 숫양 1마리, 일년 된 어린양 7마리이다. 물론 각 제물들마다 음식제물이 함께 드려진다. 그러나 짐승마다 제물의 양은 다르다. 송아지는 한 마리 당 기름 섞은 고운 가루 3/10에바와 포도주 1/2힌이다(두 마리니까 이의 두 배). 숫양에게는 고운 가루가 2/10에바, 포도주는 1/3힌이다. 어린양은 한 마리 당 가루 1/10에바와 포도주 1/4힌이다(일곱 마리니까 이의 일곱 배).
여기다가 속죄제물로 숫염소 새끼 한 마리가 추가된다. 개인의 구체적인 죄들을 다루는 자리는 아니지만,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에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4) 유월절에 드리는 제물 (28:16-25)
첫째 달 14일은 유월절이고, 15일부터 7일 동안은 무교절이다. 17절에서 『그 달의 십오일은 명절이니...』라고 말한 “명절”은 무교절의 첫날인 “큰 날”(요 19:31)을 말한다. 그 날은 토요일이 아니라도 안실일이다. 『첫째 날에는 거룩한 모임이 있으리니, 너희는 그 날에 어떤 육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니라』(18절). 그리고 일곱째 날도 안식해야 한다(25절). 첫날과 일곱째 날 모두 노동은 하지 않지만 거룩한 모임으로 경배해야 한다.
그런데 제물은 칠일 동안 내내 드려야 한다. 14일이 유월절이고, 15일부터 7일 동안 무교절이니 총 8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유월절은 14일 “저녁”이다(레 23:5). 준비는 낮부터 하겠지만, 사실은 저녁부터 유월절인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12장에서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른 것은 저녁에 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15일로 넘어간다. (성경에서 하루의 시작은 자정이나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다. 『저녁과 아침이 되니...』창 1:5)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합쳐서 이 명절은 7일간 펼쳐진다. 그래서 본문은 “칠 일 동안” 드리라 한다(24절).
이 기간에 드려지는 제물은 번제물로 어린 수송아지 2마리, 숫양 1마리, 어린양 7마리에다가,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매일 칠 일 동안 바치는 것이다. (매월 초에 드리는 제물과 똑같은 것을 칠 일 동안 드린다.) 각 짐승에 따른 음식제물들도 앞의 것과 동일하다.
5) “첫열매들의 날”에 드리는 제물 (28:26-31)
초실절의 제물 역시 번제와 속죄제로 드려지며, 내용물은 새 달 혹은 유월절의 하루치 제물과 동일하다. 즉 수송아지 2마리, 숫양 1마리, 어린양 7마리, 그리고 그에 따른 음식제물들과 속죄제용 숫염소 새끼 1마리이다. 이러한 모든 명절들의 제물들은, 매일 드리는 번제 외에 추가로 드리는 것들이다(31절).
6) 나팔절의 제물 (29:1-6)
『일곱째 달, 그 달의 첫날』(29:1)은 나팔절이다. 일반 달력으로는 9월 말경이며, 유대인 민간력에서 이 날은 “새해”(로쉬 하샤나: 로쉬=new, 하샤나=year)로 여겨진다. 이 일곱째 달을 티쉬리(Tishri)월이라 하는데, 아담이 티쉬리월에 창조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티쉬리월을 1월로 여기는 것이다. 이 달에는 속죄일(10일)과 장막절(15일부터)도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로쉬 하샤나를 매우 크게 지킨다. 특히 속죄일과 연관해서 말할 때, 한 해의 모든 잘못들을 다 씻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개념으로 새해를 맞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탈무드적인 해석이 들어간 것이고, 성경은 이 달을 “일곱째 달”이라 말씀한다. 첫째 달(아빕월, 혹은 니산월)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달이다(출 12장). 구약성경은 모두 이 개념으로 월을 계산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세우시며, 그들을 다루시며, 그들과 연관된 예언을 하는 책이다. 이처럼 성경력과 유대인 민간력은 6개월의 차이가 나는데, 민간력은 바빌론 포로 이후에 생겨난 그들의 전통일 뿐이다.
아무튼 나팔절은 나팔을 부는 절기이다. 나팔을 부는 것은 그 자체가 회중의 모임과 연관된다(민 10:3). 다시 말해 특별한 집회가 될 것이고, 여기 본문에서 『너희는 어떤 육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1절)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이 날도 특별한 안식일로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성도의 휴거 때 “하나님의 나팔 소리”(살전 4:16)가 난다고 해서, 나팔절을 보통은 교회의 휴거의 예표라고 생각하지만, 나팔절은 재림과 더 가까운 예표이다. 교회의 휴거는 오히려 오순절이 예표이다. 왜냐하면 교회와 연관되는 절기는 오순절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교회가 시작되었다(행 2장). 나팔은 휴거, 즉 공중 재림 때뿐만 아니라 지상 재림 때도 불려질 것이다.
이 날의 희생제물은 앞의 것과 좀 다르다. 번제로 어린 수송아지가 1마리, 숫양이 1마리, 어린양이 7마리 드려진다. (다른 번제들은 어린 수송아지가 2마리였다.) 그외 해당 음식제물들은 동일하며, 속죄제도 숫염소 새끼 1마리인 것은 동일하다.
7) 속죄일의 제물 (29:7-11)
『일곱째 달 십일』(7절), 즉 대속죄일(“욤 키푸르”)은 “혼들을 괴롭게 하는 날”이다.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는 날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 엄숙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때의 제물은 번제나 속죄제에 있어서 나팔절과 동일하며, 다만 “속죄를 위한 속죄제”가 별도로 드려지게 된다(11절).
이 제물은 다른 제물들처럼 의례적인 제물이 아니라 특별한 제물인데, 바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로 들어갈 때 드리는 제물인 것이다. 제사장은 먼저 자신을 위한 속죄를 해야 하겠지만, 백성들 전체를 위한 속죄를 하게 된다(레 4장). 이때 대제사장이 그 피를 가지고, 또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게 된다(히 9:7). 결코 피 없이는 지성소, 즉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드려 그 피로 지성소, 즉 아버지께서 계신 셋째 하늘에 올라가신 것을 상징한다(히 9:12). 예수님께서는 위대하신 대제사장이시요 동시에 영원한 제물이시다.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기에 그 피도 “하나님의 영원한 피”이다. 그래서 그분이 이루신 구속 또한 영원하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단번속죄”라고 한다.
8) 장막절의 제물 (29:12-40)
장막절은 『일곱째 달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12절) 지켜지는 명절이다. 그런데 35절에 보면 “여덟째 날”을 추가로 지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의 제물은 특이하다. 칠 일 동안 매일 제물을 드리되, 그 제물의 숫자가 차이난다. 번제물의 수송아지의 경우, 첫날에 13마리, 둘째날에 12마리... 이렇게 한 마리씩 줄어서 일곱째 날 7마리를 드린다. 숫양은 매일 2마리씩, 어린양은 매일 14마리씩 드리며, 그 해당되는 음식제물은 앞에서와 동일하게 드려진다(숫양과 어린양의 경우 하루에 드리는 수가 나팔절의 두 배). 속죄제물인 숫염소 새끼도 매일 1마리씩 드린다.
여덟째 날은 나팔절과 동일하게 드린다(즉 번제로 수송아지 1마리, 숫양 1마리, 어린양 7마리, 해당 음식제물들, 그리고 속죄제로 숫염소 새끼 1마리). 그러나 이 여덟째 날은 모든 명절 중 가장 성대하게 지켜졌다. 즉 “엄숙한 집회”라고 불려졌다. 이 장막절 7일의 기간은 예표적으로 재림과 천년왕국을 상징한다. 실제로 천년왕국에서는 장막절도 지켜질 것이다(슼 14:16). 그렇다면 제8일은 천년왕국 이후의 영원세계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 제8일은 7일간의 장막절과 별도로 언급되면서도, 전체 장막절 기간에 포함된다. 즉 제7일과 제8일은 연결되는 날이다. 이것은 영원세계가 천년왕국에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분명 주께서 재림하시어 다스리시는 천 년의 기간이 있고, 그 후에 하늘과 땅이 불로 소멸되고 백보좌 심판이 있을 것이며(계 20:11-13), 그 다음 영원세계가 펼쳐지겠지만, 백보좌 심판은 단지 천 년의 기간과 영원을 나누는 한 기점이 될 뿐, 이 둘은 연결되는 “왕국 시대”인 것이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단 2:44, 계 11:15). 그분의 왕국은 천년왕국에서 시작되어 영원무궁토록 이어질 것이다. 즉 그분의 왕국이라는 관점에서 천년과 영원은 연결되는 기간이다. 장막절의 제7일과 제8일은 바로 그것을 상징한다.
2. 서원의 법 (30장)
민수기 30장에서는 서원의 법을 다루고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서원을 하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람마다 약간의 다른 규정이 있다.
첫째, “남자”의 경우는 그 서원이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2절).
둘째, “어린 여자,” 즉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경우는 그 서원이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한 여자가 하나님께 어떤 서원을 했을 때 아버지가 그 서원을 인정한다면 그녀는 그 서원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서원은 무효가 되어,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3-5절).
셋째, “결혼한 여자”의 경우는 남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여자의 서원을 남편이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지켜지거나 무효가 되는 것이다(6-8절). 즉 서원에 있어서 여자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매이게 된다(16절).
넷째, “과부나 이혼녀”의 경우는 그 서원의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남편이 죽거나 헤어진 다음에 서원했다면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9절). 하지만 남편이 살아 있을 때 혹은 헤어지기 전에 서원한 것이라면, 그 남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10-12절). 즉 여자의 서원은 남편에게 묶여지는 것이다(13절).
이것은 가정 생활에 정하신 하나님의 질서이다. 남편과 아내는 인격적으로는 동등하겠지만, 그 질서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가 있다. 즉 남편이 머리가 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신약성경에서도 유효하며(엡 5:23, 고전 14:35), 따라서 아직도 유효하다. 오늘날 여자가 주관하는 가정들이 많은데, 이는 비성경적임을 보게 된다. 성경은 여권신장이나 페미니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남편에게는 권위뿐 아니라 책임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일 남편이 아내의 서원을 알고 잠잠했다면, 그 서원은 유효가 된다. 그런데 그후에 남편의 마음이 바뀌어 그 서원을 무효로 한다면, 남편이 그 서원을 깨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죄악을 담당”하게 된다(14-15절).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육신적 권위로 함부로 눌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남편은 가정의 질서를 위해 영적 권위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육신적 권위만 내세운다면 그 가정은 엉망이 될 것이다. 오늘날 이처럼 자격 없이 권위만 내세우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