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분류

열두 제자의 선택과 평지에서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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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7월호>

#50. [ A.D. 28년․갈릴리 바닷가․마 12:14-21 / 막 3:6-12 / 눅 / 요 ] 바닷가에서 많은 무리를 치유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논쟁 이후에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것을 아시고 그곳을 떠나셨다(마 12:1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언제 죽어야 하는지 그 때를 아셨는데,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신 것이다(눅 4:30, 요 8:59 참조).
마태복음 12:17-21에는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복음 3:16-12에는 이런 말씀이 없다. 여기서 인용된 이사야 42:1-4은 본래 교리적으로 재림에 관한 말씀이다(마 12:20 - 『그가 심판하여 승리할 때까지 하리라』). 그런데 마태복음 12:18-20은 그리스도께서 초림 때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것에 적용될 수 있으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받게 됨을 알려 준다. 이방인들의 구원은 선지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다(벧전 1:10). 『이방인들에게 심판을 보이리라... 또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에 소망을 두리라.』(마 12:18,21)는 것은 유대인에게 거부당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게 향하신 것을 말씀한다. 유대인이 완고하게 되어 이방인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롬 9-11장).
마태복음 12:15에서 『그러나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그곳을 떠나시니, 큰 무리가 그를 따르더라.』고 말씀하는데, 그곳을 떠나셨다는 말씀과 함께 마가복음 3:7에서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가시니』라는 말씀은 사역하신 곳이 갈릴리의 다른 지역 바닷가임을 알려 준다. 큰 무리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랐는데, 갈릴리, 유대와 예루살렘,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투로와 시돈 지방에서 온 많은 무리가 모였다(막 3:7,8).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므로 병든 자들이 주님을 만지려고 밀쳤기 때문에 배를 대기시키게 하셨다. 마가복음 3:11,12에 따르면, 더러운 영들이 주님을 보고 엎드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자 주님께서는 더러운 영들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하는 것을 금하셨다. 진리는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도 중요하다.

#51. [ A.D. 28년․갈릴리․마 10:1-4 / 막 3:13-19 / 눅 6:12-16 / 요 ]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택하셨다.
누가복음 6:12,13의 『주께서... 산에 올라가셨는데... 제자들을 부르시어』라는 말씀과 누가복음 6:17의 『주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시니』라는 말씀과 마가복음 3:13의 『그후 주께서 산으로 올라가』라는 말씀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산에서 열둘을 택하셨다. 특히 누가복음 6:12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시며 온 밤을 새우셨다. (예수님께서 온 밤을 새워 기도하신 것은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기도를 해야 될 때가 있다면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 주신 것이다.) 기도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 중에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열두 제자로 선택하셨다. 누가복음 6:13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disciples)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apostles)라고 부르셨다. 이 선택은 제자들 개인을 영원한 구원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열두 제자로 택하신 것이다. 칼빈주의 5대강령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전혀 상관이 없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비교하면(마 10:2-4, 막 3:16-19, 눅 6:14-16) 열두 제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요 1:42)과 그의 형제 안드레(막 1:16; 13:3),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막 3:17 - 주님께서 이들에게 보아네게, 즉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이름을 덧붙여 주셨다), 빌립(요 1:43-45), 바돌로매(나다나엘, 요 1:45-51), 도마(요 11:16; 14:15; 20:24-28; 21:2), 세리 마태(레위, 막 2:14),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배오(야고보의 아들 유다, 눅 6:16, 행 1:13), 카나안인 시몬(셀롯이라 하는 시몬, 눅 6:15), 주를 배반한 자인 유다 이스카리옷(막 14:10,11,43-46, 갈릴리 사람이 아님)이다.
마태복음은 교리적 특성으로 인해 제자들이 천국복음을 위임받고 표적을 나타내는 10장에서 열두 제자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에 따른 시점에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이다.

#52. [ A.D. 28년․갈릴리의 어느 산․마 / 막 / 눅 6:17-19 / 요 ] 열둘을 택하신 이후에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서 큰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시니, 제자들의 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과 투로와 시돈의 해안에서 온 백성들의 큰 무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병도 고침을 받기 위해서 왔으며, 더러운 영들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도 고침을 받았다. 특히 온 무리가 주님을 만지려고 애썼는데, 그 이유는 주님의 능력이 나가 그들을 치유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기록에는 특정인의 이름들과 함께 그들에게 나타난 기적이 기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여기서처럼 사람들을 집합적으로 언급하여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종합적으로 기록하는 구절들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53. [ A.D. 28년․갈릴리의 어느 평지․마 / 막 / 눅 6:20-49 / 요 ] 열둘을 택하신 이후에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서 설교하셨다.
누가복음 6:20의 문맥은 6:17-19과 연결되며, 이것은 열둘을 산에서 택하신 이후에 내려오셔서 평지에서 있었던 사역의 연속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와는 시기나 장소가 다른 설교이며, 내용이 일부 유사할 뿐이다.

1) 복과 화에 대해 말씀하셨다(눅 6:20-2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복이 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자들은... 지금 굶주리는 너희는... 지금 우는 너희는... 인자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그들의 동료들에게서 따돌리며,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너희를 버릴 때...』 그리고 이 네 가지 경우가 왜 복이 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고, 지금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앞으로 배부를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으며, 지금 우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앞으로 웃을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고, 인자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동료들에게서 따돌림을 받으며 욕을 먹고 자신들의 이름이 악하다 하여 버림받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앞으로 “그 날에” 기뻐하고 즐겁게 뛰놀게 될 것이고 그들의 상이 하늘에서 클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떤 자들에게 화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부자들아... 배부른 너희에게... 지금 웃는 너희에게...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할 때』 그리고 이 네 가지 경우가 왜 화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부자들은 그들의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화이고, 배부른 자들은 앞으로 굶주릴 것이기 때문에 화이며, 지금 웃는 자들은 앞으로 애통하며 울 것이기 때문에 화이고,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자들은 그들의 조상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화라고 말씀하셨다.

2) 복이 있는 자들과 화가 있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진정 행해야 할 바른 행위들을 말씀하셨다(눅 6:27-38).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라(27절).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라(27절).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28절). 너희를 천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28절).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쪽도 돌려 대라(29절). 너의 외투를 빼앗는 자에게 네 웃옷까지 가져가는 것을 금하지 말라. 또 너에게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빼앗아 가는 자에게 돌려 달라고 하지 말라(29,30절).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해주라(31절).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너희가 무슨 감사가 있으리요? 죄인들도 자기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느니라.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잘해 주면 무슨 감사가 있으리요? 죄인들도 그와 같은 일은 하느니라. 너희가 되돌려 받기를 바라고 빌려 주면 무슨 감사가 있으리요?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자 죄인들에게 빌려 주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원수들을 사랑하며, 선을 행하고 되돌려 받기를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그러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되리라. 이는 그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선하심이니라』(32-35절).
그러므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더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우라(36절).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37절).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정죄받지 않을 것이다(37절).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함을 받을 것이다(37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가 받으리니, 사람들이 후히 되어 꼭꼭 누르고 잘 흔들어서 넘치게 하여 너희 품에 안겨 주리라(38절). 이는 남에게 되어 주는 그 말로 다시 되어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눅 6:39-45).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비유를 통해 제자가 자기 선생과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39,40절). 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지 않는 위선자에게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면 형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썩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도 없고 좋은 열매를 맺는 썩은 나무도 없기 때문에 나무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알게 된다(41-44절). 이와 같이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한 보화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을 낸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이 말하기 때문이다(45절).

4)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행해야 함을 말씀하셨다. 또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누구와 같은가를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눅 6:46-49).

#54. [ A.D. 28년․갈릴리 카퍼나움․마 / 막 3:19-21 / 눅 / 요 ] 주님의 가족들이 주님을 데려가려고 왔었다.
누가복음 7:1에 따르면, 산에서 내려온 후 평지에서의 설교(눅 6:20-49)를 마치시고 카퍼나움으로 들어가셨다고 말씀한다. 마가복음 3:19은 단지 『집으로 들어가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무리가 다시 모여 빵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막 3:19,20).
마가복음 3:21의 『주의 친구들』은 3:31에 따르면 “가족”을 일컫는 표현이다. 사람들이 주님을 미쳤다고 하는 것을 듣고 카퍼나움의 한 집에 계신 주를 데려가려고 온 것이었다.

#55. [ A.D. 28년․갈릴리․마 12:22-32 / 막 3:22-30 / 눅 / 요 ]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주님의 사역이 계속되는 중에(마 12:22,23), 예루살렘에서 서기관들이 내려와서 주님을 비방했다(마 12:24). 그 내용은 모독 그 자체였다(막 3:22,30 - 비엘세붑 들렸다, 마귀들의 통치자를 힘입어 마귀들을 쫓아낸다, 더러운 영을 지녔다 등). 비엘세붑은 열왕기하 1:2의 “에크론의 신 바알세붑”을 일컫는 말로 발음상의 차이가 있다.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죄”는 주님 당대에 주님께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이기에(마 12:31,32, 막 3:28,29) 이 시대에는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는 “오는 세상”(마 12:32)은 천년왕국 때를 말한다. 이 때도 주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중이기에 이 죄가 적용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1:14-23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주제와 내용이 같으나 시기적으로 누가복음의 말씀은 후기 예루살렘/유대 사역 기간 중에 해당한다.

#56. [ A.D. 28년․갈릴리 카퍼나움․마 12:46-50 / 막 3:31-35 / (눅 8:19-21) / 요 ] 주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이 누구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3:19-21에 따르면 예수님의 형제들과 모친이 주님을 찾아왔다. 이제 예수님의 형제들과 모친이 주님께서 계신 집의 문 밖에 왔는데, 이 사실을 전달하자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어떻게 부르고 대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성경적 지침을 발견할 수 있다. BB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18 /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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