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분류

후기 예루살렘/유대 사역 (4) -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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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1월호>

#121
[ A.D. 29년 9-10월(장막절) 이후 · 예루살렘 · 마 / 막 / 눅 / 요 9:1-41 ]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치유해 주셨고, 그가 주님을 증거했다.

1.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의 치유
예수께서 지나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셨고, 제자들이 주님께 누구의 죄로 그 사람이 소경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주님께서는 그 소경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려는 목적에 따라 그가 소경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요 9:1-3). 제자들의 질문처럼 신체적 결함이나 고통은 일차적으로 죄가 원인이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사로가 죽음을 경험했던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듯이(요 11:4) 이 소경 역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병들기도 한다. 베드로의 경우 그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인지를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고(요 21:18,19), 사도 바울은 육신의 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몸의 연약한 부분을 감당해야 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에게 거하고 그를 온전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후 12:8,9).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의 원인을 그의 죄로 돌렸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언행에 대해 진노를 발하셨다(욥 42:7). 따라서 누군가의 질병과 고통, 혹은 결함을 무조건 정죄해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는 육체의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죄가 없다거나 온전하다는 착각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7:10-8:59까지 예수님께서 장막절에 은밀히 예루살렘에 가신 기록을 시작으로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는 언급이 없다가 요한복음 9:2에서 제자들이 함께 있는 것이 다시 기록되고 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때가 낮일 동안에』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9:4). 특히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따르면, 빛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이 낮이다(9:4-5). 요한복음 8:12에서 이미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도 또 한 번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이 선언을 입증해 보이셨다(9:6-7). 요한복음 9장의 소경을 포함하여 복음서에는 다섯 명의 소경들이 보게 된 기적에 대한 기록이 있다(마 9:29, 막 8:23; 10:52, 눅 18:42). 그러나 단지 예수님께서는 눈의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만이 아니라 죄의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신 하나님의 일들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구속과 관련 있는 일이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주님의 말씀대로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 보면서 돌아왔다. "실로암"은 "보냈다"는 뜻인데, 이 소경은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그가 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그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지상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신데, 예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소경도 예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데 쓰임받았다. "사도"도 "보냄을 받는 자"라는 뜻인데, 사도들도 보내신 분께 순종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했으며, 매우 영광스러운 생을 살았다.

2. 소경을 치유하신 주님의 기적을 믿지 않으려는 완악한 자들
이제 요한복음 9:8 이후부터는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 바리새인들, 즉 유대인들의 불신과 완악함, 그리고 그의 증거가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기에 상고해 보아야 한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의 이웃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보게 된 그를 "그 사람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닮았다."고도 했다. 그의 대답은 "내가 그 사람이라."였다. 사람들은 그의 눈이 보게 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은 일이라 그 사람이 아니라 닮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의 불신자들의 태도를 보여 준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을 알고 지내던 이웃 사람들은 도대체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냐고 물었고, 그는 9:6-7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것과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보게 된 것을 말했다(9:10-11). (그는 첫 번째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보게 한 그분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물었다. 계속해서 무엇인가 문제를 찾아내 부정하고 싶었기에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로 데려갔다(9:13). 그 소경이었던 자가 치유된 것이 안식일이었기에(9:14) 바리새인들이 예전에(요 5장) 주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빌미를 잡았던 것처럼 이 일을 문제시함으로써 자신들이 목격한 기적을 부인하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추종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자 하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는 진리를 거부할 진짜 같은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이제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을 데려온 사람들보다 더욱더 악하게 이 기적을 부인하고자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바리새인들은 먼저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다시 물었고, 그는 처음과 같이 정확히 대답했다(9:15-16). (그는 두 번째로 대답한 것이었다.) 당사자의 증언이 있자, 바리새인들은 그를 치유해 준 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고 그를 몰아세웠다. 그 이유는 그를 치유해 준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적을 부인하고자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사람들의 증언은 물론 당사자의 증언까지 있었으나, 믿고 싶지 않고 부정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이런 억지를 부린 것이다. 물론 바리새인들 중에 이런 반응을 반대하고 수용하려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고 그들 가운데 분열이 생겼다(9:16).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주류는 전혀 믿기를 원치 않았다.
바래새인들은 다시 그에게 치유해 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서 그 사람 스스로 그 기적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그가 자신을 보게 해준 분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공회에서 출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질문은 큰 억압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러나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사람은 담대하게 대답했다. 『그는 선지자라』(9:17). 이번에도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오게 한다. 그들은 믿지 못하겠기에 부모에게 확인하고자 했다. 그들의 불신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보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올 때까지는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에 관해서 믿지 아니하더라』(9:18).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의 부모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너희가 나면서부터 소경이라고 말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지금은 보느냐?』(9:19) 그러나 부모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사람이 우리의 아들인 것과 그가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다는 것이니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또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지도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자신에 관하여 말하리이다』(9:20,21). 그의 부모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그들이 바리새인들, 즉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만일 누구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면 그 사람을 회당에서 출회시키기로 이미 결의해 놓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부모에게서도 자신들의 불신을 위한 구실을 찾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다시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을 불러 심문했다.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또 다른 말로 그를 억압하며 거짓 증언을 하라고 이렇게 종용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9:24).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이번에도 담대했다. 『나는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내가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전에는 소경이었다가 지금은 본다는 것이라』(9:25). 또 원하는 거짓말을 듣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또 질문했다. 『그 사람이 너에게 무엇을 했느냐? 어떻게 너의 눈을 뜨게 했느냐?』(9:26) 그러나 이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는 말을 한다. 『내가 이미 당신들에게 말하였는데도 듣지 아니하더니 어찌하여 또다시 듣고자 하는가?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가?』(9:27) 위선자들인 바래새인들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위협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들이 원하는 거짓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구걸하던 그에게서, 또 죄인으로 여겼던 그에게서 책망까지 듣자 그들은 그에게 욕을 하며 『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알지만 이 자는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9:28-29). 이런 말은 8장에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외치며 육신을 자랑했던 것과 같이 이제는 "모세의 제자"라는 말로 육신을 변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아브라함의 씨이고 모세의 제자였으나 전혀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또 이런 말은 그들의 영적 무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이 종교지도자들의 무지함을 이렇게 반박했다.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당신들이 모르다니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이제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듣지 않으시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들으신다는 것이라. 세상이 시작된 이래 누군가가 소경으로 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으니 만일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리라』(9:30-33).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구걸하고 죄인으로 여겨졌던 그 사람보다 진리의 말씀에 무지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라는 목사들의 영적 실상이기도 하다. 성경대로 믿는 거리 설교자들과 구령자들보다 성경에 무지하여 복음도, 영적 진리도 선포하지 못하는 자들이 오늘날 대부분의 교단 교회들의 목사들의 모습이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고 『네가 전적으로 죄들 가운데 태어나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9:34)고 말하면서 그를 쫓아냈다.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이야말로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면 죄가 없을 것이지만 그를 통해서 선포된 진리의 말씀을 거부했기에 여전히 그들의 죄를 더 쌓았을 뿐이다.
우리는 소경으로 구걸했던 그 사람이 주님을 만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일들이 그 안에서 나타났을 때 그가 얼마나 잘 쓰임받는가를 보았다. 그를 통해서 바리새인들의 완악함도 드러났다. 그의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으로 그가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경배하다
이제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서 그와 이런 대화를 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9:35)
『그가 누구시니이까? 주여, 내가 그를 믿고자 하나이다』(9:36).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너와 말하고 있는 이가 그니라』(9:37). 『주여, 내가 믿나이다』(9:38). 그는 이렇게 예수님을 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믿었으며, 그리고 주께 경배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그를 통해서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그의 소경 됨을 치유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 경배받으시는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9장이다. 특히 9:35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는 성경 말씀이 변개된 성경들에서는 「너는 인자를 믿느냐?」로 바뀌어져 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받는데,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이 구원받고 예수님을 경배하는 말씀을 변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성경 말씀을 읽고 그와 같이 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4.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된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그 사람의 경배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심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왔으니, 이는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9:39). 예수님과 함께 그곳에 있었던 바리새인들 몇 사람은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 "우리도 소경이란 말인가?"라고 주님께 물었다. 주님의 답변은 분명했다. 『만일 너희가 소경이라면 죄가 없을 것이나 이제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본다.’고 하므로 너희 죄가 남아 있느니라』(9:41). 물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부정하고, 자신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은 자들은 심판하신다. 주님께서는 보지 못하는 자들, 즉 어두움 가운데 있으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여 구원하시는 반면, 보는 자들, 즉 어두움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은 소경으로 멸망에 이르게 하신다. 자신의 소경 됨, 자신의 영적 어두움, 곧 자신이 죄의 어두움 가운데 있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보기를 구한다면 누구든지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빛 가운데 거하며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요 12:36). 『너희가 한때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행하라』(엡 5:8).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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