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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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갈릴리 사역 (3) - 변형산 사건과 주님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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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6월호>

#98
[A.D. 29년 ․ 변형산 -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 마 16:28-17:13 / 막 9:1-13 / 눅 9:27-36 / 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형되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변형산의 지리적 위치를 예수님의 행로에 따라 판단한다면 갈릴리 북쪽에 있는 카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가셨다가 카퍼나움으로 오시는 중간의 어느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갈릴리 사역 중에 있는 사건이기에 갈릴리 지역의 어느 산일 수 있다. 그러나 행로에 따른 지리적 위치와는 다르게 변형산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으로, 주님께서 시험받으신 곳이 유대 광야가 아니라 시내 광야인 것과 같이 주님의 재림과 연관된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등장하는 사실에 근거하면 주님의 행로를 초월하여 시내 산일 가능성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마 16:28),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때까지...』(막 9:1), "하나님의 나라를 볼 때까지...』(눅 9:27)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변형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변형 모습"이 "주님의 재림의 모습"임을 알려 준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했다는 사실과 "장막"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말은 더욱더 재림의 상황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벧후 1:15-21).
마태복음 17:1과 마가복음 9:2은 이런 말씀(마 16:28, 막 9:1, 눅 9:27)을 하시고 『엿새 후에』, 누가복음 9:28은 『이 말씀을 하신 후 약 팔일째 되는 날』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일곱 번째 날이 재림과 함께 왕국이 임할 것을 알려 준다.
하늘의 구름 속에서 음성이 있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마 17:5, 막 9:7, 눅 9:35), 이 음성은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셨을 때에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 누가복음 9:31에서만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대화 내용이 주님의 죽음에 관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는 주의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더라.』
마태복음 17:9과 마가복음 9:9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인자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여기서도 주님의 죽음이 언급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막 9:10).
변형산에서 주님께서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다. 서기관들은 인자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함을 알고 있었고, 이런 말에 대해 제자들이 묻자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7:11). 이는 교리적으로 주님의 재림 이전에 있게 될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며(말 4:5),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해 역사적으로 적용하면 엘리야, 곧 침례인 요한이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했던 것처럼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마 17:12,13, 막 9:11-13). (마태복음 11:14에서도, 주님께서는 침례인 요한을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


#99
[A.D. 29년 ․ 요단 강 서쪽, 카이사랴 빌립보와 카퍼나움 중간 지역 (혹은 카퍼나움)․ 마 17:14-21 / 막 9:14-29 / 눅 9:37-43 / 요] 제자들이 마귀들린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지 못했으나 주님께서 마귀를 쫓으신 후에 제자들과 무리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고, 또 기도와 금식을 강조하셨다.
변형산 사건 다음 날(눅 9:37)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무리가 주님께 와서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을 치유해 달라고 요청한 사건이다. 주님께서 변형산에 가시고 계시지 않을 때 제자들에게 마귀들린 아이를 고쳐 줄 것을 요구했으나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고, 이 일로 인해 제자들과 서기관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막 9:14-16). 주님께서 오시자, 주님을 보고 주님께 와서 상황을 말씀드리자 주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셨다.
이 사건은 마귀들렸을 때의 상태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모든 경우가 이와 같지는 않다.) 한 사람의 아들이 미쳐서(lunatick) 몹시 고통받고 있었는데(마 17:15), 불 속에 넘어지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했는데(마 17:15), 이는 그 마귀가 그를 발작하게 한 것이다(눅 9:42). 이런 결과에 대해 성경은 그 아이가 마귀들렸기 때문이었고(마귀에 의한 질병은 육체적인 질병과 다르다 - 마 4:24; 8:16,28; 9:32), 마귀를 쫓아내었을 때 마귀사 그 아이에게서 나가고 낫게 되었다(마 17:18).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 아이가 벙어리의 영을 지녔다고 말했으며(막 9:17), 성경은 마귀를 계속해서 영으로 기록하고 있고(막 9:18,20,22, 눅 9:39,40), 주님께서는 마귀를 『그 더러운 영』 또 『벙어리이며 귀먹은 영』이라고 부르셨다(막 9:2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니라.』(마 17:20)고 믿음을 강조하신 이후에, 『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마 17:17, 참고 - 막 9:19, 눅 9:41)라고 책망받은 사람들은 제자들과 무리들이었다. 믿음이 부족함을 꾸짖으시는 것은 보통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다(마 8:26; 14:31).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력히 꾸짖고 계시는 것은 단순히 제자들만이 아니라 믿지 못했던 무리들도 포함된다. "세대"라는 말을 통해 볼 때 마귀를 쫓지 못한 것이 전적으로 제자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9:22- 24에서 믿음이 없었던 사람은 서기관들과(막 9:14) 그 아이의 아버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를 향해 참아 주셨다(마 17:17, 막 9:19, 눅 9:41).
마태복음 17:21의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을 모든 변개된 성경들이 네슬-알란드 원문을 따라 삭제했다. (마가복음 9:29도 똑같은 문맥인데, 거기서는 "금식"을 빼 버리고 "기도 외에는"이라고 바꾸었다. 이는 환란 시대의 금식의 교리를 감추어 버리는 것이다.) 현재 은사주의자들은 성경 구절이 삭제된 변개된 성경을 가지고서도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기도와 금식"을 강조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으나, 이 시대에도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를 고치기 위해 기도와 금식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표적은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복음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 표적 중에 중요한 것은 병고침과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다(마 4:23,24; 8:16). 특별히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천국이 임하기 전에 유대인들이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관계된다(마 6:33; 12:28).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으시면서 이스라엘을 회심시키시는 것이다. 여기뿐만 아니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들린 자를 고치신 것은 마귀들린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모형이 된다. 교리적으로 이 상황은 환란 시대를 보여 준다. 이 사건에서는 왕국복음과 관련해서 단순히 마귀를 쫓으라는 것 이상의 것, 즉 "기도와 금식"이 조건으로 주어진다. 이것은 환란 시대에 특별하게 적용되는 교리로 보여진다. (십자가 이전 상황은 "마지막 날들"이라는 관점에서 환란 시대와 같은 상황이다.)


#100
[A.D. 29년 ․ 요단 강 서쪽, 카이사랴 빌립보와 카퍼나움 중간 지역 (혹은 카퍼나움)․ 마 17:22-23 / 막 9:30-32 / 눅 9:43-45 / 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다시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30에 따르면 97번 항목의 사건이 있었던 곳을 떠나 갈릴리로 지나가셨으나 주께서는 아무도 아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매우 슬퍼했다(마 17:23, 눅 9:44의 "너희"는 제자들이다). 처음 말씀하셨을 때(마 16:21-23, 막 8:31-33, 눅 9:22)와 같이 제자들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반면 마가복음 9:32은 제자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으며 주께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기록한다. 또한 누가복음 9:45은 제자들이 이 말씀은 깨닫지 못했는데 이 말씀이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으므로 그들이 알지도 못하며 또 이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마저도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후기 갈릴리 사역 중에는 주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선포하신 것이 특징적인데, 실제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101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17:24-27 / 막 / 눅 / 요] 세금 낼 돈을 물고기의 입에서 얻게 하신 기적을 보이셨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카퍼나움에 오셨을 때, 세금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세금을 내시는가를 물었고, 베드로는 내신다고 말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왔을 때 주님께서 먼저 세금에 관해 베드로에게 물으시고 세금 거두는 자들을 실족케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27절) 바다에 낚시를 던져 올라오는 첫 번째 물고기 입에서 동전 한 개를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즉 주님과 베드로를 위하여 세금을 내라고 하셨다(27절).
성경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국의 왕이시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분의 자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카이사가 다스리는 왕국에 세금을 내야 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 내야 한다면 회심하지 않아 왕의 가족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비록 "지금은" 주님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요 18:36), 주님의 왕국이 될 이 나라에서 그 왕국의 자녀들이 갖는 특권을 설명하시는 부분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내셨던 것이다.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성경적 원칙이다. BB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18 /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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