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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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갈릴리 사역 (4) - 갈릴리 사역은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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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7월호>

#102
[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18:1-6 / 막 9:33-37 / 눅 9:46-48 / 요 ]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에 관해서 논쟁했기에 어린아이를 예로 가장 작은 자, 곧 자기를 낮추는 자가 가장 큰 사람임을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33에 따르면, 카퍼나움으로 오는 도중에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로 서로 논쟁했는데, 이것은 "제자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에 관한 논쟁이었다(눅 9:46). 이러한 논쟁을 한 제자들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고(눅 9:47) 어린아이 한 명을 데려다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큰 자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는 것이며(마 18:4),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었고(막 9:35), 가장 작은 자가 위대하게 된다는 것이었다(눅 9:48). 제자들에게는 낮아진 자세가 필요했다.
마태복음 18장은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가에 대해 묻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특히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회심하는 것과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자기를 낮추면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이며,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맷돌을 그의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장의 상황(위치와 내용)은 전체적으로 산상설교와 비슷하다. 산상설교(마 5-7장)와 마태복음 18장은 대환란 기간과 천년왕국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확증하시기 위해 17장에서 재림의 모습을 보여 주신 이후로 18장부터 "천국"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천국에 관한 가르침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시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18장 이후의 장들에서 천국이 임하기 전의 모습과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과 천국이 임하는 상황과 천국 내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보게 된다. 마태복음 18:1-10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 서신에 나타난 신약적인 진리가 발견되는데, 그리스도인은 율법이나 저주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갈 3:13, 롬 6:14,15) 모든 일에 자유롭지만(고전 6:12; 10:23),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실족시켜서는 안 된다(롬 13:8-10).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오순절 이전에 제시되었으나, 신약 교리의 중요한 부분과 일치하는 말씀이다.


#103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 막 9:38-41 / 눅 9:49-50 / 요 ] 주님과 제자들을 반대하지 않는 자들을 주님의 편으로 말씀하셨다.
요한이 주님과 제자들을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못하게 했다는 말씀에, 그를 막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쉬 주님을 비방할 자가 없으며, 주님과 제자들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 편," 즉 주님과 제자들의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막 9:38-40). 주님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물 한 잔이라도 주면 그 사람은 자기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9:41). 이 말씀은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데 좋은 지침을 준다.
103번 항목은 102번과 104번 항목의 말씀을 주님께서 하실 때, 요한이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104
[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18:6-10 / 막 9:42-50 / 눅 / 요 ] 실족케 하는 일과 지옥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셨다.
주님께서는 실족케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여도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8:7). 마태복음이 타인을 실족시키는 것에 대해 책임을 말씀하는 반면, 마가복음은 자신의 실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말씀한다.
마태복음 18:6의 말씀이 마가복음 9:42과 같다. 이는 103,104번 항목의 말씀 중에 103번 항목이 삽입된 것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영원한 불과 생명(마 18:8), 지옥 불과 생명(마 18:9),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과 생명(막 9:43,45), 지옥 불과 하나님의 나라(막 9:47)의 대조를 주의해 보고 강조해야 한다. 특히 마가복음 9:44,46,48의 반복을 통한 "지옥"의 강조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신체의 일부를 제거하고서라도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막 9:43,45,47), 모든 사람이 불로 소금치듯함을 받을 것이라는(막 9:49) 등의 강조하는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102번 항목에서 누가 큰 자인가에 대한 제자들 사이의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말씀하시는 문맥에서 마가복음 9:50을 읽어야 한다. 『소금은 좋은 것이라. 그러나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맛을 내리요? 너희 안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시더라.』


#105
[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18:11-14 / 막 / 눅 / 요 ] 갈릴리를 떠나시기 전에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 (1) 잃어버린 양을 찾은 기쁨에 관하여
105,106,107번 항목에 해당되는 마태복음 18:11-35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후기 갈릴리 사역이 마지막 유대 사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즉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경으로 가시기 전에 갈릴리에서 말씀하신 몇 가지를 기록한 것이다(마 19:1). 내용적으로 이 부분은 누가복음 15:3-7의 말씀과 유사하다.
마태복음 18:11은 변개된 성경들에서 삭제한 구절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잃어버린 양, 즉 세상의 방황하는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알려 준다.
이스라엘은 "잃어버린 양"이라고 불린다(렘 50:6). "잃어버린 양"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10장에서도 발견되는데, 거기서도 그 말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의 양이며,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우리 가운데 평안히 있는 양이고 그들이 하나님 밖에 있을 때는 잃어버린 양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양이라고 불리는 것은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다. 이방인에 대해 "잃어버렸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아직 양이 아니다. 양무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로 양이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하지 않고 "잃어버린 혼들(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36에서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보셨다. 이스라엘이 양이라는 사실은 구약에서 더 명확하게 제시된다(렘 13:17,20; 23:1-3; 50:6,17, 슼 9:16; 10:2; 11:17; 13:7). 예수님께서는 초림 당시에 이스라엘이라는 양무리를 인도하는 목자들, 즉 바리새인, 서기관 등의 종교지도자들이 백성을 잘못 인도하기에 그들을 가리켜 "삯꾼"(요 10:12) 또는 "이리"(마 7:15)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러한 상황을 "목자가 없어 흩어진 상태"(마 9:36, 렘 50:17)로 보셨다.


#106
[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18:15-20 / 막 / 눅 / 요 ] 갈릴리를 떠나시기 전에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 (2) 교회의 징계와 권위에 관하여
이 구절들은 형제의 죄를 바로잡고 처리하는 것에 대한 지침을 제공해 주며, 동시에 용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씀하는 것이다.
형제에게 개별적으로 권면하고(15절), 한두 사람을 더 데려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입증하며(16절), 교회에다 말하고(17절), 교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교도나 세리와 같이 여겨야 한다(17절). 형제들에게 개인적인 책망 이후에 교회의 책망이 있게 된다. 바울 사도가 이단들을 다루는 것에 대해 디도서 3:10,11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 구절 역시 교회 시대에 적용이 가능하며, 이 원리는 신약 지역 교회의 징계의 원칙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게 교회의 징계를 다루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5장인데, 잘못된 자들을 쫓아내라고 말씀하고 있다.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나니 그러한 악한 사람은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라』(고전 5:13). 성경에서 용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먼저 개인적인 잘못에 대한 용서는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나(마 5:46, 눅 6:32-36, 롬 12:17-20,21), 교회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좀 다르다. 이때에는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는 것에 기초해서 용서해야 한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바로 교회적인 문제이다.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 먼저 한두 명이 가서 그의 잘못을 지적하여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그가 그들의 책망에도 돌이키지 않고 교회의 책망에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는 교회에서 추방당하는 것이다(고전 5장).
이 땅에서 "너희"(교회)가 합심하여 구한 것을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18-19절).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주님께서 그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지역 교회의 가장 작은 형태와 출발점을 보여 준다(20절).


#107
[ A.D. 29년 ․ 갈릴리 카퍼나움 ․ 마 18:21-35 / 막 / 눅 / 요 ] 갈릴리를 떠나시기 전에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 (3) 용서에 관하여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되는가에 관한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21-22절). 또 어떤 왕이 일만 달란트 빚진 한 사람을 탕감해 준 것과 탕감 받은 그 사람이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종에게 악하게 행한 것을 예로 들어 진심에서 우러나와 형제 각 사람을 그들의 잘못과 더불어 용서할 것을 말씀하셨다(23-35절, 특히 33,35절). 내용적으로 누가복음 17:3,4에 유사한 말씀이 있다.


#108
[ A.D. 29년 ․ 갈릴리 ․ 마 / 막 / 눅 / 요 7:1-9 ] 주님의 형제들이 주님께 유대로 가서 드러나게 행하라고 권고하였다.
주님께서 유대에서 다니지 않으시고 갈릴리에서 다니셨던 것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요 7:1). 유대인의 명절인 장막절(재림의 예표)이 가까워지자 주님의 형제들이 주님께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주님을 믿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도 주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눈으로 드러난 이적들을 통해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때 주님께서는 "나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나는 아직 나의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다.
6,8절의 『나의 때』는 2:4의 『나의 때』와는 다른 때를 말한다. 2:4에서는 『나의 때』가 명백하게 십자가에 달리실 때를 언급하지만, 여기 6,8절에서는 영광 중에 이 땅에 왕으로 임하시게 될 재림의 때를 말한다. 이때야말로 주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실 때이다. 주님의 형제들은 지금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지금," 즉 그때 당시에는 오히려 주님께서 고난받으시고 수치를 당하셔야 할 때였던 것이다.

후기 갈릴리 사역에 대한 정리
후기 갈릴리 사역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후기 유대/예루살렘 사역과 연관해서 볼 때, 주님의 죽으심이 임박해지는 때였다. 따라서 후기 갈릴리 사역의 특징은 주님의 죽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이었다. 물론 왕국복음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역의 내용에 변화가 있었다. 이 기간의 사역을 통해 교회에 대해 두 번 언급하셨는데, 주님의 죽으심 이후 재림 때까지, 즉 주께서 지상에 계시지 않을 때에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 주시는 것과도 관련된다.
이제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역으로 가시는 주님의 행보가 뒤따른다. 유대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인들이 거부하는 장면과 주님을 거부한 코라신과 벳새다, 카퍼나움에 대한 심판의 경고 등을 통해 주님께서 거부당하고 죽으시러 가신다는 모습도 암시된다. BB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 18 /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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