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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방송의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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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6월호>

극동 방송의 해프닝



5년 전 12월 어느 날이었다. 난데없이 극동 방송에서 제안이 왔다. 내용인즉 그들 방송팀이 우리 교회 예배 실황을 녹음하여 방송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교회 회원수는 약 280여 명이었다. 나는 우리 교회 관계자에게 극동 방송에서 우리 교회 설교를 내보내게 되면 청취자들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나라 교회들에서 항의가 심할 텐데 그만두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극동 방송의 녹음하는 팀이 와서 예배 실황을 녹음해 갔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설교를 극동 방송은 방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있게 답변했다. “방송하는 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들에게 수고비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 나는 크리스마스의 비성경적 근거에 대해 설교했다.
나는 그보다 몇 년 전인 1989년경 극동 방송의 초청을 받아 그 직원들에게 설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신약도 출간되지 않았고 사복음서만 출간된 상태였다. 나는 그날 요한복음 6장으로 영적 생명에 관해 설교했었다. 설교가 끝나자 송용필 부사장이 자기 방에서 차 한 잔 하자는 제의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하고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나에게 요한복음에서 몇 가지 시제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면서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네댓 구절을 물었다. 내가 다 기억할 수 없으나 나에게 <한글킹제임스성경> 사복음서(그때는 <새성경> 사복음서)가 있으니 함께 찾아보자고 했고, 함께 찾아서 읽어 줬더니 자기가 생각한 것과 일치한다며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되면 자기 교회에서 쓰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바른 성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하여 오랜만에 동지를 만난 것만큼 반가웠고 고마웠다. 현재 <한글킹제임스성경>이 23판까지 나왔지만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극동 방송 녹음팀이 설교를 녹음했고, 가지고 떠날 준비를 할 즈음(우리 교회는 지방에서 온 성도들의 귀가를 돕기 위해 저녁 예배를 오후 2시에 드리는데 대개 3시 반이면 오후예배가 끝난다.) 예배가 끝난 후 휴게실에 갔더니 극동 방송의 한 간부가 교회로 들어와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를 모른다고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전에 극동 방송에 와서 직원들에게 설교했을 때 봤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여길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더니, 지나다 보니 방송국 차가 있어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극동 방송에서 우리 교회 설교를 녹음해서 내보내겠다고 하는데 내 설교는 우리 나라 교계의 정서에 맞지 않기에 내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책임지고 내보내겠다고 했다. 제도 교회와 은사주의 교회에서 항의가 빗발칠 텐데 그래도 내보내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다시 한번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복음의 진리와는 무관한 극동 방송이 선교란 명분을 내걸고 온갖 잡탕들까지도 내보내며 방송국 운영에 급급한 그들이 왜 생뚱맞게 우리 교회 설교를 내보내겠다고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에 극동 방송에서 우리 교회 녹음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설교가 너무 강해서 내보낼 수 없으니 좀 약한 설교로 대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면 그렇지 복음의 진리와 무관한 극동 방송이 진리의 지식을 담은 내 설교를 어떻게 내보낼 수 있겠는가! 그들이 복음과 진리에 관심이 있고 이 나라 교인들의 영적 각성에 관심이 있어 순수한 복음과 좋은 영적 양식을 공급했더라면 이 나라는 거의 매일같이 구원받는 사람들이 새로 태어나고 영적 양식을 먹고 제대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로 쓰임받는 일꾼들이 늘어났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바른 성경과 바른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이 목적을 실현하지 못한 채 은사주의자들의 거짓 교리를 확산시키는 데 협력하여 이 나라 교계를 영적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했던 것이다. 우리 교회 녹음 담당자는 그 말을 나에게 전하면서 다른 설교 테이프 하나를 골라 들고 자기가 알기에는 이것이 가장 약한 것이라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의 아들들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겼던 주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이 견디다 못해 키럇여아림 거민들에게 보냈고 그 궤를 다윗왕의 명에 따라 키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가지고 나올 때 웃사와 아히오가 새 수레에 궤를 실었다. 그들이 무지함으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지 않았기에(민 4:1-15) 궤가 수레에서 흔들리자 웃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 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자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삼하 6:1-8).
복음의 진리와 무관한 방송을 복음 방송이라고 이름만 붙이면 그냥 복음 방송국이 되는 것인가? 그런 방송을 선교라며 거짓말했던 자들도 구원받았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될 것이고 그 자리에서 자기들이 행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불에 태워보면 아신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그들의 섬김과 순종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으면 헛수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성경대로 실행했느냐, 안 했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의 수고가 금, 은, 보석이었으면 불에 태웠어도 남게 되겠지만 나무, 짚, 그루터기였다면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3:12 -15). 물론 약한(?) 설교라며 다시 보낸 설교 역시 결국 그들은 내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목소리 좋은 아나운서 한 명 앉혀 놓고 쓰레기 같은 말로 양념을 치며 먹을 것같이 보이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복음의 진리는 좋은 목소리라고 해서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1987년 미국에서 귀국한 후 성경 문제로 극동 방송에서 1시간 동안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후 어느 날 어디를 가는 중에 차에서 방송을 한 번 듣다가 너무 놀라서 그때부터 그 방송을 다시는 듣지 않았다. 그 날은 오전 10:30경이었는데 이 나라에서 방언 전문가라는 한 목사를 초빙하여(?) 아나운서가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목사님, 왜 방언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방언 전문가의 답변은 이러했다. “가령 어떤 주부가 간음을 했는데 그 죄를 어떻게 남이 알아듣는 말로 자백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방언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아나운서의 대꾸가 더 가관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즉시 방송을 껐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방송이나 다른 기독교 방송은 단 몇 초도 듣지 않게 되었다.
극동 방송에는 나와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지금 어느 감리교 목사로 일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아직도 지역 방송 국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서 성경에 관심을 표명했던 송부장이 성경을 사랑한다고 판단했기에 나는 <한글킹제임스성경> 초판 출간 때에 서교동의 한 호텔을 빌려 기념회를 했는데 그에게 와서 설교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쾌히 수락을 했었다. 자리가 마련되고 음식도 준비되고 하객들도 많이 왔었다. 그런데 설교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10분... 15분... 20분... 30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객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극동 방송에서 나를 축하하러 왔던 두 친구들도 난감함을 어찌할 수 없어 몰래 자리를 떴다. 할 수 없이 내가 서서 설교자가 오지 못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얼버무리고 대신 성경의 유래에 관해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시작하실 때면 늘 완벽하게 하심을 지난 13년간의 사역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부르시지도 않고 쓰임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맡게 되면 그 사역은 괴멸되게 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일수록 큰 사역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역을 감당하지 못할 자들에게 주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이 완벽하기 때문이다(롬 11:29).
하나님께서 부르시지도 않고 들어 쓰시지도 않는 자들이 어찌하다가 하나님의 일들을 맡게 되면 그들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머리를 굴리고 세상 지혜(육신적인 발상)를 동원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열매는 별로 없게 된다.
이 나라의 복음 방송이 제대로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 진리의 지식을 전파했다면 그 어느 방송 매체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좋은 시설을 가지고도 계속 청취자들을 잃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설교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받게 할 수 있으며 죄인의 생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롬 1:16, 고전 1:18).
극동 방송과 아세아 방송을 통해 은사주의 교회가 확산되자 이것을 들은 중국에 사는 교포들이 언제쯤 자기도 복 받아 부자되겠느냐고 묻는 편지들을 보낸다고 한다. 사역에 열매가 없는 것은 나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극동 방송 관계자들은 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1년에 24,000명 이상의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고 있다. 주말이면 서울 시내 15곳 이상의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이는 극동 방송과 아세아 방송을 듣고 구원받는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구령의 열매 없는 일, 그것은 사역이 아니라 장난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장난말이다. 유명무실한 사역을 왜 그들은 붙들고 있는 것일까? 투수의 공이 계속 빗나가면 그 투수는 등판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정도이다. 만일 극동 방송이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기관이라면 이를 물질적으로 후원했던 전 이사장 최 아무개 재벌은 왜 망했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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