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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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에게서 한 수 배우려고 모인 한기총 소속 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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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6월호>

카톨릭에게서 한 수 배우려고 모인 한기총 소속 목사들




지난 5월 1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최성규 목사) 한국교회미래목회포럼(회장 이성희 목사)”에서 ‘수도원적 영성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임영수 목사(모새골 대표)와 심종혁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가 발표자로 나와 ‘목회자의 영성과 영성관리,’ ‘수도생활의 역사적 전통과 영성’이라는 제하의 발제문을 발표했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내적으로 공허한 개신교회들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수도원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카톨릭으로부터 영성 수련의 방법을 배우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세미나이다.
카톨릭에 항거한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개신교회 지도자들이 이제는 카톨릭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며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이는 개신교와 카톨릭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변개된 성서를 통한 거대한 종교 통합 운동의 열매이다.
모임을 마련한 이성희 목사는 「평생토록 헌신하며 영적 수련을 하는 가톨릭에 비해 성직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 생활을 하는 개신교의 영성이 약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개신교에서는 삶의 현장에서 정직하고 열심히 모범적으로 사는 ‘생활의 영성’과 개신교에 맞는 수도 형태가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한 만리현교회 이형로 목사가 『개신교의 역사가 짧으니 가톨릭에서 깊이 있는 영성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과연 예수회 신부를 초청해서 무엇을 배우려고 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연합을 위한 움직임들
개회 예배 설교자로 나선 최성규 목사(한기총 대표회장, 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사도행전 2:47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균형 잡힌 신앙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다. 자신이 속한 은사주의 교단과 말씀 운동을 하는 교단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은사주의 교단에서는 말씀 운동을, 말씀 운동을 하는 교회는 성령 운동을 실행하고 있다며 서로 하나 되고 화합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또한 성경 말씀 모두가 긍정적(?)인데 특히 로마서 8:28이 가장 긍정적인 구절 중에 하나라고 꼽았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즉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만 있다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기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왜곡하여 적용한 것이다.
최성규 목사의 개회 설교 이후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임영수 목사도 영성 훈련은 교리를 초월한다고 말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실제로 강의 중에 안셀름 그륀(Anselm Gruen)이라는 카톨릭 신부를 언급하면서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성의 훈련 방법은 다양하기에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수도 생활을 통한 영성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심종혁 신부는 사막의 은수자, 베네딕도 계열의 수도원, 탁발수도회, 예수회 등 다양한 수도회와 수도 생활을 소개했다. 수도 생활은 청빈, 절제, 겸손, 비움, 금욕을 통한 경건,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세속화되는 교회 속에서도 그 자리매김을 꿋꿋이 해왔다고 수도원 영성을 호평했다.
이번 포럼을 통해서 점점 카톨릭화되어 가는 개신교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을 이룬 지 500년도 채 안되어 다시 창녀의 치마폭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루터교가 이미 카톨릭화된 것처럼 말이다. 교리가 다르고 실행이 다른 교회들이 한기총으로 연합하더니 결국에는 카톨릭과도 하나 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별을 명령하셨는데(고후 6:17, 롬 16:17, 빌 3:19) 종교적 이익을 위해서 서로 하나가 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연합은 진리 안에서 그분의 자녀들이 하나 되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 되기 위해서 진리를 버리고 있다. 성별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인 것이다.

영성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영성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임영수 목사는 영성이란 “세계와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 응답해 가는 삶의 전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영성을 정의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세속적인 삶과 구분되는 영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즘 들어 영성 훈련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이런 훈련들은 다분히 외적이고 육신적인 현상으로 그칠 때가 많다. 영성이라는 말 대신 성경에 있는 용어인 “경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경건”(Godliness)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생각하시는 것을 생각하고(고전 2:16)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며(시 37:4) 그분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고(시 139:21) 그분의 말씀과 그분이 이르시는 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고전 8:3) 그분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다(롬 12:1,2, 마 19:29). 경건은 끝없는 성화의 과정이며 그래서 성경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딤전 4:7)고 명령하신다. 경건은 단순히 수도 생활을 통해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건은 세상으로부터 성별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며,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수도 생활이 더 나은 영적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
우선 수도원의 기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시대로 보자면 수도원 제도는 어거스틴과 제롬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암흑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지만 카톨릭에 대항할 만큼 충분한 용기를 갖고 있지 못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수도원을 탈출구로 이용했던 것이다. 수도원이라고 하는 피난처는 거룩하게 살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카톨릭 감독들에게 복종할 만큼 용기가 없는 자들에게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1)
모든 거짓 신앙은 진리에 대한 견해에서 대단한 유사성을 보인다.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성경에 위배되는 모든 사상은 단 하나의 기원, 즉 사탄에게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수도 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수도 생활을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하여 초기 교회의 공동체적 이상과 순교 시대의 내적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교다운 ‘자기 버리기’의 여정이 다양한 형태로 정착된 생활 양식”이라고 그럴듯하게 정의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사상이다.
수도원은 독신주의를 포함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고 말씀하시면서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삼가라고 명하리니, 이 음식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믿고 아는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받도록 지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딤전 4:1,3). 하나님께서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 『신실한 자녀를 둔 사람』을 사역자로 삼으셨다(딛 1:6). 결혼하지 않고 여러 가지 규칙들을 지키는 것이 외적으로는 지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사용함에 따라서 부패할 모든 것이니라.)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이런 것들이 의지 숭배와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골 2:20-23).
외적 규례들에 의한 자기 통제는 사람을 억압할 뿐이다. 거짓은 사람을 억압하고 속박하는 반면, 진리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를 준다(요 8:32, 갈 5:1).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외적인 규례들이 없어도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삶을 살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간다. 그 속에는 진리로 인한 참된 자유가 있다. 수도 생활은 중이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일 뿐, 더 나은 영적 생활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예수회 신부를 초청하고 분별력 없는 개신교회 목사들이 모인 이번 포럼은 개신교회와 카톨릭이 연합하는 좋은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진리를 배제한 채 서로 하나 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분리주의자이시다.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고후 6:15). 성경적인 원칙과 실행을 준수했다면 이와 같은 포럼은 개최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회 신부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이며, 카톨릭과 어떤 부분을 같이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카톨릭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며 교회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도 아니다. 카톨릭은 요한계시록 17장에 등장하는 창녀일 뿐이다. 과거 로마카톨릭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박해했는지 벌써 잊어버렸는가? <폭스의 순교사>와 피터 럭크만의 <신약교회사>를 보라. 지금은 몸을 숙이고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로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라고 말했다(딤후 3:14). 종교적 위선자인 예수회 신부를 불러서 쓸데없는 것을 배울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배우며,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머물러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경건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BB


1) 수도원 제도에 관해서는 피터 럭크만, <신약교회사>, “제11장 황혼을 비추는 작은 불빛들”(말씀보존학회 간)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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