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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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참으로 질기고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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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7월호>

“역사는 참으로 질기고 잔인하다.” 이 말은 참된 역사책인 성경을 160회 이상 숙독하고 24,800권 이상의 책들을 두루 섭렵한 피터 럭크만 박사가 인류의 역사에 관해 내린 총평이다. 흔히들 이런 질문을 한다. “인류는 왜 존재하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지구의 미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로 세상의 종말이 있는 것인가?” 이런 “인생의 의미”와 “인류의 운명”에 관한 질문들은 “역사”가 시작되면서 생겨났다.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위대한 선언, 즉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창 1:1)라는 말씀이 선포된 이래로 앞선 질문들도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 끝날 때 이런 질문들은 역사와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누가 이 역사를 끝낼 수 있는가? 그 권한은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역사의 시작을 선포하시지 않았다면 그런 질문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질문들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으려면 마땅히 참된 역사책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우주와 인류의 역사책”으로서 과거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종말과 인류의 운명, 곧 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의 교회의 운명에 관한 총체적인 예언들과 미래 역사에 대한 종합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이 제시하는 미래 역사는 인류가 꿈꾸는 미래 청사진과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전천년주의 역사관”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반면, 성경을 증오하고 배격하는 인류는 인간이 신이 되어 지상 낙원을 건설하고 다스리는 인본주의적 “무(후)천년주의 역사관”으로 미래를 “예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깊숙이 개입하시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역사의 주인공을 배제한 채 인간이 원하는 역사를 인간 마음대로 써 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 결과 인류는 지난 6천 년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실패를 반복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자기들만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역사이며, 목이 굳은 백성이로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굳은 자는 갑자기 패망을 당하리니, 도움이 없으리라』(잠 29:1).

언젠가 피터 럭크만 목사가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인간학 강좌”의 강사 중 한 명으로 초청을 받아 강의한 적이 있었다. 강사들 중에는 불교의 중, 카톨릭 사제, 뉴에이지 운동가 등도 있었는데, 중년의 감리교도인 한 여교수가 목사들 중에서도 강사 한 명을 초청해야 한다는 제안을 해서 럭크만 목사가 선정되었다. 그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간음자, 거짓말쟁이,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환경론자, 매춘부, 성도착자, 마약 중독자, 멍청이들이 우글거리는 정글로 들어갔다고 묘사했다. 인간학 강좌를 맡고 있는 교수는 수염을 기른 “히피”로서 입에 시가를 꼬나문 채 교탁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고, 강좌에 참석한 회중은 20명 정도 되었는데 눈빛은 열정적이었지만 매춘부, 마약 중독자, 술주정뱅이, 도둑들과 다를 바 없는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예외였던 인물은 자신을 강사로 초청한 순진한 감리교도 여교수였는데,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그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인간학 강좌 교수는 럭크만 목사를 마지못해 소개하면서 그에게 강단을 내주었는데, 럭크만 목사의 위트 있는 설명에 따르면 자기에게 강단을 내준 것이 그 교수의 큰 실수였다고 했다. 우선 그는 분필을 들고 “세 개의 도표”와 일련의 선들과 그림들을 칠판에 그리면서 이것이 세상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기원과 미래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도표는 다윈, 헤겔, 헉슬리가 가르친 것을 나타내기 위한 도표였고, 두 번째 도표는 홉킨스와 골드스미스의 견해를, 세 번째 도표는 아인슈타인과 사르트르의 주장을 보여 주는 도표였다. 그러고 나서 클라렌스 라킨의 <세대적 진리>에 나오는 전천년주의 성경적 역사관을 나타내는 도표를 마지막으로 그린 다음 “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강좌에 참석한 학생들은 처음 세 도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반면, 네 번째 도표에 대해서는 한 시간 동안 질문을 퍼부어 댔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는데도 그들은 강의실을 떠나지 않았고, 그다음 시간에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들어오는 가운데 그 이후로도 두 시간 동안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럭크만 목사가 그린 네 번째 도표는 “인간 쇠락(타락, 붕괴)의 법칙”(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보여 주는 도표였는데, 참된 역사책에 따른 이 성경적 도표에서 가장 압권은 “인류 역사의 모든 세대가 배교로 끝나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들”이었다. 그래서 앞선 세 가지 도표들에는 15도 각도로 올라가는 선들이 많았지만, 마지막 도표에는 15도 각도로 내려가는 선들이 많았다. 이 선들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다루는 요한계시록 20:1-6에 이를 때까지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학생들은 결코 이 부분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기 있는 직선은 뭡니까? 그게 무엇을 의미하죠?” “왜 ‘노아’라는 이름을 썼나요? ‘실로’ 위에 별이라고 쓴 것은 무슨 뜻이죠?” “왜 인류 역사를 일곱 시기로 나누었나요? 거기 있는 보좌는 누구를 위한 겁니까?” “교회 시대는 무엇이고, 천년왕국은 또 무엇이죠? 그 왕국의 시작을 나타내는 직선이 7년 끝에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죠?” “천년왕국 이후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나요? 어떻게 인류의 역사가 7천 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쏟아부은 것이다. 바로 그때 럭크만 목사님이 결론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적절한 말을 생각해 내려던 차에 자신을 강사로 초청한 감리교도 여교수가 손을 들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결국 강사님께서 정말 말씀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라는 것 아닌가요?” 그 말에 럭크만 목사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궁극적으로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계 1: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외치셨고, 장차 도래할 재림 때도 성경의 모든 예언과 인류의 역사를 완성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계 16:17)라고 외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장에서 역사를 시작하신 분의 인류를 향한 최종적인 선언이다.

성경이 “인류의 역사”와 관련하여 가장 강조하고 있는 두 가지 명제가 있다. 첫째, 인류의 연합과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결국 무산될 것이다. 『악인은 손에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로운 자의 씨는 구원을 받으리라』(잠 11:21). 『마음이 교만한 자는 누구라도 주께 가증하니, 손에 손을 잡을지라도 그가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5). 이 말씀들은 이 땅의 모든 왕과 대통령, 국회의원 및 정치 ․ 종교 지도자들이 결코 깨닫지 못하는 진리이다.


국가의 존립과 전쟁과 경제적인 붕괴를 두려워하는 모든 나라들은 끊임없이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 “협약”과 “협정”을 맺는다. 말하자면 하나님께 신뢰를 두지 않는 것이다. “3국 동맹,” “로마 베를린 연합전선,” “북대서양 조약 기구,” “오슬로 협정,” “와이 협정,” “유엔 헌장,” “국제 연맹,” “더 위대한 공동 번영,” “국제 연합” 등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자기와 똑같은 인간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하나가 되면,” 곧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에큐메니칼 전선”만 강력하게 구축할 수 있다면 당당하게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떠들어 댄다. 과연 이들이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미래란 무엇인가? 이 땅에 지상 왕국을 세우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통치하러 오시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왕국 건설자들”(Kingdom Builders)이기 때문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여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들끼리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손에 손을 잡은 그들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고 말씀한다. 『오 너희 백성들아, 단결하라. 그래도 너희가 산산이 부서지리라. 너희 먼 나라들의 모든 사람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는 허리를 동이라. 그래도 너희가 산산이 부서지리라. 너희는 허리를 동이라. 그래도 너희가 산산이 부서지리라... “이 백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맹을 말할지라도 너희는 동맹을 말하지 말라. 너희는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 말며 무서워 말라.” 하셨음이라』(사 8:9,12).


또한 세계 평화를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유치하고 어리석은 발상도 없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로다』(눅 2:14). 오늘날 이 구절은 가장 오용되는 구절들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은 쏙 빼놓은 채 『땅 위에는 화평』만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화평의 왕국”이 도래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왕국” 대신 “인간들의 왕국”을 세우려 하지만 그것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인류가 『모든 민족들의 열망』(학 2:7)인 “평화”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그 열망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현실이고, 인류 역사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위대한 교훈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1861-1865) “줄리아 워드 하우”라는 한 여성 시인이자 노예 해방론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성경적 진리를 거부한 “마귀의 종”이었다. “아브라함 링컨”의 북부 연합군을 지지했던 그녀는 그 군대가 남부 연합군 소속의 군인들을 짓밟고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찬송시를 작사했다. “나의 눈이 영광스런 주님의 오심을 보노라. 주께서는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고 주님의 섬뜩한 날쌘 칼로 치명적인 번개를 발하시니, 주의 진리가 계속 행진하도다.” 재림 때 이 땅에 왕국을 가져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 민족들을 짓밟으실 것이라는 예언을 남북 전쟁에 적용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녀는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북부 연합군에만 있고 남부 연합군에는 없는 것처럼 노래했는데, 과연 그 결과 미국 전역에 왕국이 세워졌고 또 전쟁이 끝났는가? 땅 위에 화평이 도래했는가?


지금 누구를 속이려 하는가? 역사를 직시하는 것이 두려운가? A.D. 70년의 예루살렘 파괴와 로마의 야만적인 침략, 샤를마뉴와 칭기즈칸의 정복 전쟁, 십자군전쟁, 백년전쟁, 프랑스 인디언 전쟁, 미국독립전쟁, 나폴레옹 전쟁, 보어전쟁, 의화단사건, 청일전쟁, 미국 스페인 전쟁, 필리핀 내란,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 등 평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군대 역사 백과사전>(1986)에 따르면 B.C. 3500년 이후로 4,345회의 전투가 있었고, 1900년부터 1987년까지만 해도 3,800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으며, 자국의 정부에 의해(러시아, 독일, 중국, 캄보디아, 르완다 등) 죽은 사람들만 해도 1억 7천만 명에 달한다. 소위 “평화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리는 유엔이 1945년에 창설된 이후로 177회의 무장 갈등이 세계에 있었는데, 그중 12회는 굵직하고 중요한 전쟁이었고, 21회는 중간 규모의 전쟁, 23회는 반란, 16회는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전쟁, 36회는 정권 교체를 위한 내란, 24회는 군사력 개입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지겨우리만치 잔인한 전쟁들의 연속이다!

성경이 가장 강조하는 두 번째 명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신 이래로 친히 계획하신 완벽한 형태의 정부를 이미 예언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사 9:6,7). 말하자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참된 의와 화평의 왕국이 이 땅에 임할 수 있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왕국들은 멸망하고 하나님의 왕국만이 영원히 세워지게 된다. 『이들 왕들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멸망하지 않는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넘겨지지 않을 것이요, 도리어 그 왕국이 이 모든 왕국들을 쳐부수고 멸하여 영원히 설 것이니이다』(단 2:44). 이것이 참된 역사책인 성경의 주제이고,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다.


세상은 인간들이 종교나 교육을 통해 조금만 더 성숙해지고 조금만 더 서로를 이해하면 인류의 궁극적 목표인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지난 6천 년 동안 성숙해 왔으면 충분히 성숙한 것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이 더 지나야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성숙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구원이 없는 교육과 종교” 또는 “바른 성경이 없는 교육과 종교”는 “저주”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인간의 교육, 과학, 종교, 철학 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셈인가? 지금까지 인류 연합과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계획과 노력들 중에서 영속하는 성공을 이룬 것이 있었는가?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은 전쟁, 폭동, 혁명, 내전, 감옥, 정신병동, 법정 소송, 국가 부채 그리고 썩은 시체들로 귀결되었을 뿐이다. 미리 기록된 역사책인 성경에 의하면 앞으로 가장 큰 두 번의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그 전쟁들을 막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인류의 역사는 참으로 질기고 잔인하다.” 주된 원인은 인류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쓰신 인류의 역사책인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왕국의 도래를 기다리라! 인간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라! 주님의 방식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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