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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무지가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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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5월호>
재판관 입다와 관련된 역사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지로 인한 비극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이다. 인생의 비극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무지 가운데 일어난다. 세상 이치를 모르는 것도 비극적이지만 영적 무지는 더욱 끔찍하고 영속적인 비극을 가져온다. 입다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비극들은 어떤 영적 무지로 인해 일어난 것일까?말씀에 무지한 비극
영적 무지가 낳은 첫 번째 비극은 말씀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은 비극이다. 『입다가 주께 한 가지 서원을 하여 말하기를 “만일 주께서 틀림없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나를 맞이하러 내 집 문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로 바치리이다.” 하더라』(판 11:30,31). 암몬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판 11:29) 입다는 불안하고 초조한 나머지 하나님께 성급한 서원을 했다. 승리를 주시면 돌아올 때 자신을 맞이하러 문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승리를 주셨는데 그것은 입다의 서원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입다가 돌아왔을 때 입다를 맞이한 것은 그의 외동딸이었고, 이를 본 입다는 마치 자신을 죽이는 것 같았을 것이다.
입다의 경솔하고 충동적인 서원은 말씀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마땅히 알아야 할 영적 진리를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사람을 번제로 바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면 왜 입다는 이런 서원을 했던 것일까? 그가 살던 시대는 일반 백성은 물론 재판관들까지도 율법을 몰라 매우 타락했던 시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니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판 21:25). 그들은 그들이 쫓아내지 못한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에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입다가 싸우려 했던 암몬 자손은 자식을 불에 태워 몰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귀의 자식들이었다. 성경은 이 악행에 대해 강도 높게 경고하고 있는데 이는 그런 관습이 당시에 이미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 너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지니라. 나는 주니라』(레 18:21). 이것은 오늘날로 치면 온갖 새벽 기도, 철야 기도, 작정 기도 등의 기도 형태와, 록 밴드를 동원한 육신적이고 감성적인 경배, 구도자 예배 등의 예배 형태들에 해당한다. 인신 제사만 드리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그들의 종교 행위들을 통해 우상 숭배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입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도 않는 잘못된 서원을 한 것도 무지한 일이었지만 그 서원을 실행에 옮긴 것은 더 큰 무지의 결과였다. 입다는 자신의 서원이 한 번 입에서 나간 이상 주님께 지키는 것이 옳다고 여겼지만, 그가 성경을 알았더라면 자신이 한 서원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레위기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서원을 했는데 그 서원이 (자신의 딸을 살해하려는 것과 같은) 죄와 관련이 있다면 그런 서원을 한 것에 대해 자백하고 속죄를 위한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자기 입술로 악을 행하거나 선을 행하리라고 공언하여 맹세하였으면 그 사람이 맹세로 공언한 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그로부터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그가 그것을 알게 되면 이것들 중 하나에 그는 죄가 있느니라. 그것들 중 하나가 그에게 죄가 될 때 그는 그 일에 죄를 지었다고 자백해야 할 것이요 그가 지은 자기 죄를 위하여 그는 주께 속건제물을 가져와야 하리니, 양떼나 염소떼에서 암컷으로 어린양이나 염소 새끼를 속죄제물로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의 죄에 관해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만일 그가 어린양을 가져올 형편이 못 되면 그때는 자기가 범한 허물을 인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주께 가져와서, 하나는 속죄제물로 또 하나는 번제물로 삼을 것이라. 그가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먼저 속죄제를 위한 것을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 머리는 목에서 비틀어 끊어도 몸은 쪼개지 말며 그는 제단 옆에 속죄제물의 피를 뿌리고 그 나머지 피는 제단 밑에 짜 내리니 그것이 속죄제니라. 그는 두 번째 것을 그 방식에 따라 번제물로 드릴지니, 그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하면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레 5:4-10).
서원을 철회할 때 바치는 제물은 암양 또는 암염소 새끼거나,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였기 때문에 입다는 능히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율법에 무지했기 때문에 자기 딸의 생명을 잘못된 서원의 대가로 희생시켜야 했던 것이다. 입다가 치른 대가, 심지어 이보다 더 큰 대가는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도 치르고 있다. 말씀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교회를 평생 다니면서 교회에 모든 것을 바쳤어도 지옥에 가는 것이다. 또 구원받았다 해도 말씀에 무지하면 아무리 진지하게 하나님을 섬겼다 해도 복음에 합당한 삶, 곧 성도의 유업에 동참자가 되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여 청지기로서의 삶을 낭비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신의 혼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타 버려서 큰 손해를 당하게 된다(고전 3:15).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오늘날의 교회 강단들은 성령이 부재하고, 성경에 없는 교리를 말하며, 그 내용도 이방 종교가 추구하는 세상적인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말씀에 대해 무지하기에 스스로를 저주하여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성도의 책무에 무지한 비극
영적 무지가 낳은 두 번째 비극은 에프라임의 무지로, 자신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입다가 길르앗인들을 이끌고 암몬 자손을 패배시키자, 요단강 동편에 살고 있는 에프라임 지파가 싸움을 걸어왔다. 『에프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건너갈 때에 너와 함께 가도록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네 집과 너를 불로 태우리라.” 하니』(판 12:1). 암몬 자손이 길르앗 지역을 18년 동안 괴롭혔지만 에프라임 지파는 지금까지 수수방관했고, 입다가 암몬을 치러 함께 가자고 할 때도 마땅한 의무를 저버렸다. 이제 입다가 암몬 자손과 싸워 승리를 거두자 시기심에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에프라임 지파는 항상 전쟁이 끝난 뒤에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와서 몽니를 부리는 성향이 있다. 그들은 기드온이 미디안인들과 싸울 때도 그러했다. 『네가 미디안인들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이같이 대우하였느냐?” 하고, 그들이 그와 심하게 다투더라』(판 8:1). 에프라임은 적들과 싸울 준비는 안 되어 있고 동족과 싸울 준비는 되어 있는 지파였다. 에프라임은 열두 지파 중 가장 크고 강력한 지파였기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북쪽을 에프라임이라고 부를 만큼 열 지파 전체를 대표하는 강한 지파였다.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많은 물질과 권력의 복을 받은 그런 에프라임이 내전으로 말미암아 지파의 거의 절반이 죽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무와 책임을 모르는 데서 온 비극이었다. 그 지파는 공치사나 늘어놓는 데 열심이었지 정작 동족을 위해서는 싸우지 않았던 것이다.
지역 교회의 어떤 성도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일한다. 그러나 다른 성도는 겨우 손님같이 와서는 예배를 관전만 하는가 하면, 잃어버린 혼들을 위해 전도지 한 장 나눠주지 않는 성도도 있다.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하고 섬겨야 할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날 때 온 교회가 하나 되어 대처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다는 짓은 뒤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불평이나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불평이나 할 만큼 한가하지 않지만 구경꾼과 방관자들은 늘 불평을 일삼는다. 이런 비극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해야 할 영적 의무를 뒷전에 두고 대안 없는 비판이나 불평을 일삼는 일은 삼가야 하는 것이다.
적에 대한 무지의 비극
영적 무지가 낳은 세 번째 비극은 적에 대한 무지의 비극이다. 에프라임이 싸움을 걸어올 때 처음에 입다는 차근차근 잘 설명했으나 그들이 『너희 길르앗인은 에프라임에서 도망한 자들로서 에프라임인들과 므낫세인들 가운데 있다.』(판 12:4)라고 조롱하자 이에 격분하여 에프라임을 치고 말았다. 입다가 에프라임과 싸운 것은 입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분을 넘어 복수심에 찬 그는 자기 동족을 원수인 암몬처럼 취급하여 요단강을 건너 도피하려는 에프라임을 요단 통로에서 붙잡아 죽이기까지 했다. 그 결과 그 지파의 거의 절반인 42,000명이 죽었는데 동족간의 내전치고는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입다는 동족과 원수를 혼동했다. 과거나 현재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영적 동족을 적으로 몰아붙여 많은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적은 마귀라는 것이다.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세상을 사랑하도록 유도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인하고 변개시키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적이다. 변개된 성경에서 비롯된 온갖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확산시키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적이고,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약화시키고 허물고 파괴시키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적이다. 심지어 지역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소유했어도 각자의 은사가 다르기에 영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구분하지 못할 때(엡 4:1-7),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믿음의 성숙도가 다른 지체들을 적대시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틈타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마귀이다. 바로 이 마귀가 그리스도인의 적인 것이다!
성경은 입다와 관련된 역사를 통해 영적 무지가 낳은 비극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가르쳐 준다. 구원받은 성도가 진리의 지식에 이르러야(딤전 2:4) 하는 이유는 영적 무지로 인해 성도 자신은 물론, 그가 속한 지역 교회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