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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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인가, 이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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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2월호>

성경에 무지한 자들은 아무 구절이나 가져다가 “교회 시대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습성이 있다. 이 악한 습성 때문에 지난 2천 년간의 교회사에서 이단들이 흥성하여 수많은 혼들이 지옥에 던져졌다. “교회 시대를 위한 복음”은 소위 예루살렘 회의가 개최된 사도행전 15장에서도 논란이 정리된 바 있듯이,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전파되어 온 “은혜의 복음”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 마찬가지니라』(11절).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은혜의 복음의 요체인데, “행위”를 절대적으로 배제한 이 구원의 진리가 신약성경 곳곳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롬 3:23,24).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이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던 “유대인들”마저도 은혜의 복음을 깨닫고서 율법의 행위를 버렸다고 고백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바울, 바나바, 베드로를 위시한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2:16).

성경에서 “복음”(gospel)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구절은 마태복음 4:23인데, 그것은 유대인들을 회개시켜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왕국 복음”이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또 왕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고쳐 주시더라.』 이 왕국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는 말씀이었지만, 유대인들의 거부로 인해 천국이 연기되자 그 천국이 다시 도래하기 직전인 마지막 대환란 기간에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내용”으로 메시지가 조정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마 24:13,14). 이 왕국 복음은 적그리스도의 통치하에서 대환란을 통과해야 할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인데, “믿음에 더하여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복음의 메시지가 요한계시록에도 계시되어 있다.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1,12). 대환란 기간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들로 불리는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써 대환란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있어야 구원을 받고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에 행위를 강조하는 이 복음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아닌 것이다.

대환란 기간에는 유대인들을 위한 왕국 복음 외에도 이방인들을 위한 “영원한 복음”이 전파된다.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드리라.”고 하더라』(계 14:6,7).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은 성경에서 “이방인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곧 대환란 기간의 이방인들은 적그리스도(사탄이 육화한 존재)가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면서 환란을 끝까지 견뎌야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경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 “영원한 복음” 역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전파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다르다.

이외에도 “복음”에는 아브라함에게 전파된 것으로 언급되는 복음이 있는데, 갈라디아서 3:8에 계시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갈 3:8). 여기에서 전파된 “복음”은 아브라함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었다. 당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파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 아니라, 아브라함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넓은 의미로 볼 때, 아브라함처럼 “전가된 의”와 “의롭게 되는 것” 등의 영적인 복들을 얻기 원하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행사하라는 뜻도 되겠지만, 당시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에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 “믿음의 조상”은 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여겨진”(창 15:5,6) 것이었고, 또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된” 것이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씨에 관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는 자기가 번제물로 바칠 이삭을 반드시 부활시키시어 그를 통해 씨를 번성케 하실 것을 믿었음을 보여 준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믿음이 어떻게 그 행함과 더불어 작용하였으며,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음을 네가 보느냐?』(약 2:21,2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그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씨라 불릴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고 하셨으니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은 다른 구약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혀 몰랐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친 행위”로 의롭게 되었고, 그 행위의 바탕에는 “이삭의 부활에 관한 믿음”이 깔려 있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겨지고 의롭게 되는 과정에서 “믿음”이 역사한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신약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것이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서 의롭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의 후손인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롬 5:1). 이에 반해 아브라함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이 교회 시대에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라는 말씀은 얼마나 복된 말씀인가!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식을 바치지 않아도, 곧 “어떤 행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해 주시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말이다. 행함이 없어도 죄악들이 용서받아 죄들이 가려진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님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데도(롬 4:6-8), 이 “거룩한 은혜의 복음”을 모독하며 그 위대한 진리를 가리는 저주받은(갈 1:7,8) “이단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실 대환란 기간에 전파될 “왕국 복음”과 “영원한 복음”은 이단들의 시야에서 다소 멀리 벗어나 있기에 그들의 이단 교리에 그다지 막대한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마태복음 27장의 갈보리 십자가와 위치상 제일 가까운 사도행전 2장의 “복음”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이단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데, 곧 “사도행전 2:38”에서 선포된 복음이 그러하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38절). 베드로는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한 것이며, 또한 먼 곳에 있는 모든 사람, 즉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라.』(39절)라고 했다. 즉 가까이 있거나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곧 『이스라엘의 온 집』(36절)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넘겨준 유대인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리이까?』(37절)라고 물었을 때 위와 같이 답변했다(38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 민족의 죄들을 사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위한 복음이었다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침례”가 필수적으로 동반되고 있는 사도행전 2:38은 그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죄들의 사함을 통한 중생”과 “구원의 필수 요건으로서의 물 침례”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이없게도 현 교회 시대에 가짜 교회들에 의해 오용되고 있다. 사도행전은 “유대인의 경륜에서 교회의 경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에 무지한 자들이 유대인을 위한 구절을 가져다가 교회에다 적용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 구절은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통치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고 있을 뿐인데, 이단들에 의해 교회 시대의 구원을 위한 구절로 오용되었다.

우리는 “로마카톨릭”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시하여 “침례를 통한 중생”을 외치는 이단들의 발원지가 “사도행전 2:38”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교회들은 처음부터 침례가 아닌 “세례”(洗禮)를 주었는데, 첫 글자 “씻을 세(洗)”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물로 죄를 씻는다”는 이단 교리에 젖은 자들이 변개된 개역성경을 번역함으로써 “행위 구원의 이단 교리”를 가르친 것이다. “이단”(異端)이라는 단어는 한자에서 보듯이 “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 같지만 구원의 결정적인 부분에 이르러서는 침례(세례)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물 세례”로 무장한 자들은 자기가 교단에 가입된 교회이고, 또 한기총이나 교회협의회에 소속되어 있기에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는 이단 판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그리스도의 교회, 순복음교회에 가입되어 있기에 이단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에 제사장들, 장로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같은 특정 집단들도 이단이 아니란 말인가? 특히 그 이단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으로 정죄했고, 또 사도 바울을 그 “나사렛 이단의 두목”으로 낙인찍지 않았던가!(행 24:5) “소속 집단”에 근거해서 내리는 “이단 판별”은 실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는 수적이나 양적인 허세로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는 변개되지 않은 “바른 말씀”으로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 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양육하여 마귀들과의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무장시킨다. 그 교회는 말씀으로 잘 양육된 성도들이 거리로 나가 죄인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설교하고 구령하는 교회일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믿고 소망하기에 이 악한 현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요일 2:15-17).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소망하기에 현 세상을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주님을 위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다(딛 2:11-14). 이러한 진리에 무지한 군상들이 바른 성경이 최종 권위가 되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을 이단이 아니라고 떠벌리지만, 사도행전 2:38을 붙들면서 구원을 위해 “물”을 강조하면 예외 없이 이단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대한성서공회가 돈을 벌려고 찍어 낸(고후 2:17) 가짜 성경을 보면서도 자신을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나, 성경에는 한 가지 성경만 있듯이 교회에도 한 가지 교회만 있을 뿐이다. 이 하나의 교회는 진주와 같은 유기체이며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구성하는 우주적인 교회다. 이 유기체인 교회는 조직체인 교단 교회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신부이기에 대환란이 닥치기 전에 셋째 하늘로 휴거되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정결케 될 것이고, 어린양의 혼인식에 설 주인공으로 준비될 것이다. 그러나 교단 교회들은 그 셋째 하늘에 없을 것이다.

교회 시대에 물 침례는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모형”이요 “간증”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주님께서는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거절하라.』(딛 3:10) 하셨고,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되 이 교리를 가지고 오지 아니하면 그를 집에 영접하지도 말고 그에게 문안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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