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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 없는 믿음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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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5월호>
『나는 네 안에 있는 가식 없는 믿음을 기억하노니, 이는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케 안에 있었고 네 안에도 있음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이 말씀은 말 그대로 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유니케, 손자인 디모데가 사도 바울을 통해 동일한 믿음을 전수받았음을 보여 준다. 나열된 순서대로 할머니 로이스가 가장 먼저 구원을 받았고, 이어서 어머니 유니케가, 끝으로 손자인 디모데가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구원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먼저 동시에 구원을 받고 손자인 디모데는 철이 들면서 구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이들 가족이 바울을 만났을 때 디모데가 이미 철이 든 후여서 할머니, 어머니, 손자가 다 함께 한날한시에 구원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이 말씀하는 분명한 내용은 이 말씀에 거론된 삼대(三代)가 바울을 통해서 "가식 없는 믿음"을 전수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제도교회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종종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모태신앙"(母胎信仰)이다. 그들은 이 말을 아주 자랑스럽게 발설하기 일쑤다. 이 말을 <천주교 용어 · 자료집>에서 찾아보면, 『어머니의 태 안에서 받은 신앙, 조상 때부터 이어 온 오랜 믿음을 뜻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을 다시 <교회용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문자적으로 "어머니의 태(胎)에 있을 때부터 가지게 된 신앙"이란 뜻으로, 자기 의지나 결정권과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부모(혹은 모친)에게서 전수받은 신앙을 가리킨다(딤후 1:5).』라고 정의되어 있다. 모태신앙에 대한 이 두 정의는 다소 길이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특히 <교회용어사전>이 "디모데후서 1:5"이라는 성경의 장절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구절을 근거로 모태신앙이란 말의 정의를 내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디모데후서 1:5의 말씀이 모태신앙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어불성설이다. 성경 말씀은 성경 말씀을 통해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불임이었던 한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사무엘이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기는 했지만 이런 경우를 모태신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외에도 아담과 이브가 낳은 카인과 아벨, 엘리가 낳은 홉니와 피느하스, 다윗이 낳은 압살롬, 솔로몬이 낳은 르호보암, 여호사밧이 낳은 여호람, 히스키야가 낳은 므낫세 등 성경 그 어디를 보아도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입증해 주는 용례는 없다. 만일 어머니 배 속의 아기가 어떤 유전자 같은 것에 의해 어머니의 훌륭한 신앙을 이어받을 수 있다면, 존 후스를 따라 카톨릭과 전쟁도 불사했던 보헤미아나 청교도 신앙으로 시작한 미국이 오늘날처럼 냉랭해지거나 타락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먼저 엘리 제사장의 경우를 보자. 홉니와 피느하스에 대해 성경은『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 그들은 주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벨리알의 아들들이 되고 말았는가? 그 원인에 대하여 성경은 간접적인 서술로 전해 준다.『그가 알고 있는 죄악으로 인하여 그의 집을 영원히 심판하리라고 내가 그에게 말하였나니, 이는 그의 아들들이 스스로를 더럽혔으나 그가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음이라』(삼상 3:13). 이 말씀으로 미루어 엘리가 비록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었으나 자신의 자식 교육에는 실패한 인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식을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교육하는 일은 등한시했던 것이다.『그와 함께 두고 평생 동안 그것을 읽어서 그가 주 그의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배우게 하고 이 율법의 모든 말씀들과 이러한 규례들을 지켜 그것들을 행하게 할지니라』(신 17:19). 만약 제사장 엘리가 모세오경 중 이 한 구절의 말씀만이라도 제대로 실천에 옮겨서 자식들을 키웠다면, 자신과 자기 집안의 멸문지화(滅門之禍)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어 보자. 히스키야는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이스라엘에서 몇 안 되는 성군의 반열에 드는 왕이다. 그가 몸에 종기가 나서 죽게 되었을 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네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을 것이요, 살지 못하리라.』(왕하 20:1)라는 최후통첩을 받는다. 이에 히스키야가 하나님께 울며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무화과 반죽을 붙이게 하여 종기를 치유해 주시고, 그의 날에 15년을 더해 주셨다. 그리고 그에 대한 표적으로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는 미증유의 기적까지 보여 주셨다. 히스키야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15년을 더 향유하고 죽은 뒤 그의 어린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다.『므낫세가 치리하기 시작할 때 십이 세였으며, 그가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을 치리하였더라』(왕하 21:1). 이 말씀에 따르면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키야가 하나님께로부터 연장 받은 15년 중 넷째 해에 낳은 아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느지막이 얻은 아들이었으니 그를 향한 사랑이 오죽했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품에 안고 사랑을 듬뿍 쏟아 부었을 히스키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데 온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가장 중요한 "자식 교육"을 깜박하고 만 것은 그로서는 실로 천려일실(千慮一失)이었다. 만약 히스키야가 솔로몬의 잠언을 읽었더라면, 아니,『아이를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라는 이 한 구절만이라도 그 엄중함을 알고 므낫세를 길렀더라면, 그는 분명 유다의 역대 왕 가운데 선한 왕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은 그의 과오에 대해 일말의 사정도 두지 않는다.『므낫세가 주의 목전에 악한 것을 행함으로 유다로 죄를 짓게 한 그의 죄 외에도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 채웠더라』(왕하 21:16). 이 얼마나 비참하고 서슬 퍼런 총평인가!
자식은, 부모가 그의 어린 시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 주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에 따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무신론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모데를 영적 아들로 양육한 사도 바울의 공은 매우 크다. 한편 사랑하는 손자요 아들인 디모데의 든든한 울이 되어 그의 사역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했을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케의 공로 또한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바울이 한 가족 삼대의 이름을 거명하며 언급한 "가식 없는 믿음"이란, 일찍이 베드로도 말한바『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벧후 1:1)과 동의어일지언정,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는 모태신앙을 지칭하는 말은 결코 아닌 것이다.
허무맹랑한 자만에 사로잡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들이여, 지금이라도 그대들 두 발이 지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놓여 있음을 깨닫고, 돌이켜야 할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입으로 시인하고 주 예수 영접한 날
나는 네 안에 있는 가식 없는 믿음을 기억하노니, 이는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케 안에 있었고 네 안에도 있음을 확신하노라. - 디모데후서 1:5 -
1
입으로 시인하고 주 예수 영접한 날
주님은 그때부터 내 안에 거하시네
단 한 점 가식 없는 그 믿음 내게 주사
저 높은 천성을 향해 걸어가게 하셨네
2
일찍이 사도들이 걸어간 믿음의 길
수많은 선진들도 따라간 그 선한 길
동일한 믿음 하나 내게도 심어 주사
크고도 밝은 옛길을 걸어가게 하셨네
3
일곱 번 흙 도가니 단련된 은의 말씀
옛 성도 목숨 바쳐 지켜낸 육십육 권
순수한 그 말씀을 내게도 전해 주사
주 예수 다시 오실 날 기다리게 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