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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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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1월호>
시편 50편은 그 표제가 『아삽의 시.』로 되어 있다. 아삽은 헤만과 여두둔과 더불어 다윗의 악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며, 감사와 찬양뿐 아니라 "예언"을 하기도 했다(대상 25:1-7). 총 23절로 이뤄진 시편 50편은 ① 시온에서 빛을 발하시는 재판장(1-6절), ② 위대한 재판장께서 희생제에 관하여 자기의 백성을 가르치심(7-13절), ③ 바로잡힘과 구원을 위한 말씀(14,15절), ④ 위대한 재판장께서 악인을 책망하심(16-21절), ⑤ 바로잡힘과 구원을 위한 말씀(22,2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능하신 하나님, 곧 주께서 말씀하셨고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땅을 부르셨도다. 완전한 아름다움인 시온에서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오셔서 잠잠하지 아니하시리니 그의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의 주위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그가 위로부터 하늘들과 땅에까지 부르시리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려는 것이라. 내 성도들을 내게로 다 모으라. 그들은 희생제로 나와 언약을 맺은 자들이라. 하늘들이 그의 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가 재판장이심이라. 셀라』(1-6절). 본 단락 끝의 "셀라"는 그것이 "재림"의 문맥임을 보여 준다. 그날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분의 음성은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땅에 "천둥소리"로 울려 퍼질 것인데, 이것이 재림 때 맛보게 될 하나님의 능력 중 하나이다. 『그분의 굉장한 음성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해서 들으라. 그분은 온 하늘 아래에 그 음성을 내보내시며 그분의 번개를 땅 끝까지 보내시는도다. 그후에 음성이 울려 퍼져 나가니, 그분이 자신의 탁월하심을 드러내는 음성으로 천둥을 치시는 것이라. 그분의 음성이 들리면 그것들을 멈추게 하지 않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음성으로 놀랍게 천둥 소리를 내시며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큰 일들을 행하시는도다』(욥 37:2-5).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천둥 음성"으로(요 12:28,29) 땅을 부르시어 거기에 흩어져 있는 "자기 백성"(4절)을 불러들이실 것이다. 자기 백성, 곧 『그들은 희생제로 나[하나님]와 언약을 맺은 자들』(5절)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외에는 그 어떤 민족과도 "희생제"로 언약을 맺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아름다움인 시온에서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셨도다』(2절). 하나님께서 완전한 아름다움인 시온에서 빛을 발하시는 때는 주께서 그분의 영광의 빛을 발하시려고(사 60:1) 땅의 시온에 오시는 날로, 달리 말하면 『우리 하나님이 오셔서 잠잠하지 아니하시』는 날이다(3절). 결국 그분께서 "침묵을 깨시는 그날," 그분 앞에서는 불이 삼키고(살후 1:7,8), 전 세계적으로 광풍이 불어닥쳐 악인들은 타작마당에서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쭉정이같이 날려 가게 될 것이다(호 13:3, 슼 9:14). 주님께서 그렇게 침묵을 깨시고 위로부터 하늘들과 땅에까지 불러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것은, 위대한 "재판장"(judge, 6절)으로서 그들을 판단하시려는(judge, 4절) 것이다. 주께서 땅에 오시면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은 시온에 모일 것이다. 주께서 백성을 판단하시는 재림 때에는 하늘들이 그분의 의를 선포할 것인데(6절),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롬 10:1-4)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라』(7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무엇을 판단하시려는 것일까? 그들의 "종교적 형식성"이다.
『내가 계속해서 내 앞에 드려진 네 희생제나 네 번제로 내가 너를 책망하지 않으리라.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들도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숲의 모든 짐승이 내 것이요, 일천 산 위의 가축들도 내 것임이라. 내가 산의 모든 새들을 알며 들의 짐승들도 내 것이라. 내가 설령 굶주릴지라도 네게 말하지 않으리니 이는 세상과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이기 때문이라.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분께 네 서원들을 갚고,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해 낼 것이요,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8-15절).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드린 희생제나 번제 자체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선심 쓰듯 제물을 가져오는 종교적 형식성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감사가 담긴 제사와 마음의 맹세를 지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분께 네 서원들을 갚고』(14절). 말하자면 제물이 아닌 "마음"을 달라는 얘기다! 『너희 옷을 찢지 말고 너희 마음을 찢으며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이키라』(욜 2:13).
제물을 바치는 자가 그것을 처음부터 형식적으로 드렸겠는가? 그 마음이 시간과 함께 퇴색하고 형식만 남게 되어 책망을 받는 것이다. 이전과 동일하게 "제물"을 드리지만 감사의 마음이 없다.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언제부턴가 십일조와 헌금도 형식이요, 교회 출석과 구령도 형식이며, 순종 또한 외형만 있을 뿐 자원함이 없다. 믿음이 죽어 버린 것이다! 『너희의 수많은 희생제물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가 말하노라... 헛된 예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게 가증함이요, 새 달들과 안식일들과 집회들을 모으는 것도 내가 견딜 수 없으니 심지어 엄숙한 모임까지도 악한 것이니라』(사 1:11-13). 형식적인 종교 행위는 하나님을 견딜 수 없게 한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을 때에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경배와 헌신을 받으시며 우리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이다.
『내가 설령 굶주릴지라도 네게 말하지 않으리니 이는 세상과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이기 때문이라』(12절). 바울은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고전 10:26)라고 인용함으로써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고전 10:25-27). 그런데 『내가 설령 굶주릴지라도』라는 말씀은 참으로 독특한 표현이다. 하나님께는 육신이 겪는 굶주림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이렇듯 굶주리시지 않지만, 자기 백성을 향한 "굶주림"은 있으시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기를 "갈망"하시는 것이다. 『오 내 백성이 내게 경청하고 이스라엘이 내 길들로 행하였더라면!』(시 81:13)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하나님의 백성은 의로운 삶을 향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한 마리의 목마른 수사슴이 되어 주님을 향해 그 갈한 눈을 들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시 42:1). 그런데 이 목마른 수사슴처럼 고난을 당한다면 어찌해야 할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분께 네 서원들을 갚고,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해 낼 것이요,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14,15절). 이것은 교리적으로는 "고난의 날," 곧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인 대환란 때 구해 냄을 받는 것을 가리키지만, 신약 성도가 그의 고난의 날에 구해 냄을 받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알 수 있게 해 준다.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갚은 뒤" 주님을 부르라는 것이다! "성도로서 할 일을 다 한 후에" 도움을 구하면 주께서 응답하실 것이고, 그러면 그 일로 주께서 영화롭게 되신다는 얘기이다. 고난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그것을 편히 지나갈까 눈에 불을 켜고 살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행위를 바르게 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성도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케케묵은 문제들"만 잔뜩 짊어지고 나아오는 것은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태도이며, 성도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하나님의 눈이 악인에게로 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말하노라. 네가 내 규례들을 선포하기 위하여 또 내 언약을 네 입에 두기 위하여 네가 무엇을 행해야 하느냐? 네가 교훈을 싫어하고 내 말을 네 뒤에 던지는도다. 네가 도둑을 보면 그와 동조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는 속임수를 발하는도다. 네가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전적으로 너와 같은 자인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겠고 그것들을 네 눈 앞에 정연하게 두리라』(16-21절). 이 책망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율법책을 평생 동안 읽어서, 주 그의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배우고 율법의 모든 말씀들과 규례들을 지켜 행할 의무가 있었다(신 17:18,19). 그러나 그는 간음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질렀고(시 50:18, 삼하 11:4), 이로써 남의 아내를 빼앗아 남의 양을 도둑질한 사람이 되었다(시 50:18, 삼하 12:1-9). 또한 그 죄를 숨기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야에게 술을 주어 그녀와 동침하게 하려 했으나(삼하 11:12,13, 합 2:15), 이도 여의치 않자 그를 아예 죽이기 위해 자기 입을 악에게 주고 자기 혀로 속임수를 발했다(시 50:19, 삼하 11:15). 다윗이야말로 주의 교훈을 싫어하고 주의 말씀을 자기 뒤로 던져 버린 "악인"이었던 셈이다(17절). 주께서는 그런 다윗이 주님을 업신여겼다고 말씀하셨다(삼하 12:10). 그렇다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규례들을 선포하고 그분의 언약을 자기 입에 두는 사람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16절) 자기가 선포한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을 선포한 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파할 자격이 주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가 선포한 그 말씀을 모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롬 2:17-24).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전적으로 너와 같은 자인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겠고 그것들을 네 눈 앞에 정연하게 두리라』(21절). 하나님께서는 3절에서처럼 21절에서도 침묵을 깨신다. 하나님은 때때로 죄에 대해 잠잠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분의 침묵은 죄를 용인하고 계신다거나 죄에 대해 무관심하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죄인들이 받아야 할 심판을 유보하고 계실 뿐이며,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하나님은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겔 33:11).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결행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분의 오래 참으심 뒤에 침묵이 깨어지면 두려운 일이 닥치게 된다(살후 1:7-9). 실제로 머지않아 주님은 침묵을 깨시고 재림하실 것이다. 침묵이 깨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것을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잘게 찢으리니 아무도 구해 낼 자가 없으리라』(22절).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무서운 분이시다. 갈보리에서 찢기신 분의 침묵이 깨지면 죄인들이 찢겨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주님은 바로 그런 모습으로 오실 것이다(사 63:1-3, 계 19:15). 하지만 무서운 경고 뒤에 한 가닥 희망이 제시된다. 『누구든지 찬양을 드리는 자는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바르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23절). 주께서 침묵을 깨시기 전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고 행위를 바르게 하면 그분의 구원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의 침묵을 악용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다가올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살전 1:10)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