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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9년 11월호>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비록 사탄이 공중 권세의 통치자로, 또 이 세상의 통치자로 그분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섭리적인 주관하심을 뛰어 넘지는 못한다. 이에 이방의 통치자였던 바빌론의 느부캇넷살 왕도 그분의 통치권은 영원한 통치권이요 그분의 왕국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나, 그분께서는 하늘의 군대에 있어서나 땅의 거민 가운데서나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시나니(단 4:34,35)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는 그분의 백성인 어느 한 종족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섭리적인 다스리심을 받는다. 하지만 그 섭리적인 다스림이 모든 사람들에게 같지 않고, 각 대상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그 대상은 기본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기준인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과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곧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든 면에서 구별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비록 섭리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섭리적으로 주관하실지라도, 구체적으로 이방 왕국들의 통치자요 신은 사탄이다. 사탄은 항상 자신의 왕국을 일으켜 하나님의 왕국을 대적해 왔다. 따라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은 항상 적대관계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이스라엘은 범죄하면 이방인들에게 지배당하고, 이스라엘이 축복받아 강성해지면, 이방은 이스라엘에게 복종하며 평온하게 된다(왕상 4:20-34). 개인적인 심판에 관해서도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판단받고, 이방인들은 양심으로 판단받는다(롬 2:12-15).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새롭게 탄생된 백성이 있으니, 곧 교회다. 교회는 이들과는 또 다른 특별한 집단이다. 교회를 구성함에 있어서는 그 출신이 이방인도 있고, 유대인도 있겠지만, 교회는 더 이상 유대인으로도 불리지 않고 이방인으로도 불리지 않는다. 오직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만이 개인적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인과 교회는 서로 같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이들 셋을 다루시는 방법도 서로 다르고, 따라서 성경에서도 이 셋에 해당되는 말씀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성경을 나누어서 공부하라는 말씀은 단지 시대적인 구분만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세 대상에 대해서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에게 주시는 말씀과 이방인들을 향한 예언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책망과 축복들이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그 각 대상들을 향한 말씀들을 정확히 알 때에야 비로소 그 어우러져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총체적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1. 유대인
아브라함 이래로 유대인은 택함받은 민족이었다. 그 택함은 지금까지 한 시도 변한 적이 없다. 이 시대에 유대인들이 버림받은 상태가 되었다고, 그 민족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이 선택받은 것은 그들 조상 아브라함의 선택에 의한 “무조건적인 선택”이다(창 12,13,15,17장).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할 때(당시는 아브람) 쌍방간의 계약을 위한 어떠한 조건도 제시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으로 그에게 복주신 것이었다. 물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했고, 그 언약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주어졌다. 세상의 각 나라들은 나름대로의 법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정통치 왕국을 위해 구체적인 항목으로 법을 제정해 주신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뿐이다(롬 9:4,5). 물론 이 율법의 언약은 다소 조건적이다. 율법에서 항상 하는 말은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건은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내가 명령한 모든 것대로 행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렘 11:4)는 말로 설명된다. 그들과 그들의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는 오직 그들이 율법에 복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 언약이 파기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 언약의 파기는 율법과 함께 주어진 주의 사항이기에 아브라함이 받았던 무조건적인 선택이 파기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모세에게 경고한 언약의 파기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약속된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신명기 28-32장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데,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청종하면 그 땅에서 번성하고, 그들이 율법을 저버리면 타국 땅으로 쫓겨난다는 것이다(신 28:58-64).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죄함으로 그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그분의 전지하심으로 미리 아셨다. 그래서 그분은 이 조건적인 언약 가운데서 그들이 회복되는 조건 또한 말씀해 주신다(신 30:1-5).
그 언약의 내용에 따라 유대인들은 범죄하여 그 땅에서 쫓겨났다. 바빌론으로 잡혀간 것이 바로 그것이며(B.C. 606), 그들이 회복된 이후에도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결과로 다시 쫓겨나 2000년을 있게 된다. 그들의 쫓겨남은 단지 그 땅에서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것과 같이 되어 버려,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하나님께 영적으로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현재 상태다.
그렇지만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 유대인들은 회복된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윗에게 주신 그분의 언약 또한 이들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네 보좌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삼하 7:16)는 언약이다. 이 말씀에 따라 다윗의 왕국과 그 보좌는 회복되어야 하고, 그것도 영원히 굳게 서야 한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예언의 구절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이 그들의 메시야와 더불어 회복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의 교리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에서도 유대인들이 회복된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롬 11:26). 물론 그들의 회복은 심판(대환란)을 통한 회복이고, 회복된 이후에는 가장 위대한 민족, 이 세상의 핵심 민족이 될 것이다(출 19:6).
2. 이방인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방인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이시라면 이방 세계의 통치자는 사탄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자신의 왕국을 구성하여 하나님의 신정통치 왕국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각 개체로는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각 민족들의 특징이 어떻든, 개성이 어떻든, 민족성과 그 문화가 어떻든 완전히 무시되고 오직 “민족들”이라고 묶여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떤 경우에도 “민족들”로 불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한 “민족”이다. 따라서 “민족들”이라고 묘사한 곳은 항상 이스라엘을 제외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 두 용어는 동의어이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육신적인 속성으로 말미암아 갈라지고 서로 싸우지만, 반면 그들은 항상 하나로 통합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은 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거나(창 11장), 하나님의 왕국을 대적하거나,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는 경우인데, 이는 이 마지막 때에 극대화되어, UN이나 EU나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뉴에이지 운동 등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성경적 진리를 반대하기 위해 세워졌고, 또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한다.
시편 2편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예언이다. 어찌하여 이방이 분노하며 백성들이 헛된 일을 꾀하는가? 땅의 왕들이 나서고 치리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주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그들의 결박을 끊고 그들의 멍에를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시 2:1-3). 그들의 이러한 연합은 마지막 날의 아마겟돈까지 이어질 것이요, 그 결국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멸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쭉정이를 불태우기 위해 단으로 묶듯이(마 3:12) 지금 이방인들을 섭리적으로 묶고 계신다.
이방인들의 역사를 통괄하는 예언은 다니엘서에 잘 나와 있다. 느부캇넷살의 꿈 속에 나타났던 형상(단 2장)과, 다니엘이 보았던 네 짐승의 환상(단 7장) 등은 마지막 때까지 펼쳐질 이방 왕국들의 역사를 보여 주는데, 그 관점은 주로 이스라엘과 메시야를 대적하는 위치에 있는 이방 제국들이다. 당대 최고의 왕국으로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바빌론, 또 당대 최고의 왕국이었던 메데-페르시아, 역시 당대 최고의 왕국으로 대표적인 이방 왕국이었던 그리스와 그 뒤를 잇는 로마, 그리고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직접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왕국, 세속 역사가들이 세계사를 어떻게 쓰든지 간에,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이방 세계의 역사이다.
이 역사적인 예언 가운데에는 교회 시대에 등장하는 이방 국가들에 대한 예언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자, 곰, 표범으로 묘사된 다니엘 7장의 환상들이 교회시대의 이방 세계를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어디까지나 페르시아나 그리스나 로마를 가리킨다. 그러다가 그 환상은 멀리 뛰어 넘어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의 왕국으로 간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말했듯이 성경에서 이방인들은 항상 유대인과 대치되는 상황 속에 등장한다. 그런데 교회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어버렸고, 하나님께는 “버림받은” 상태가 되어 버렸으니, 이스라엘을 대적할 만한 특별한 이방 왕국이 예언 가운데 등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모이게 된다. 이런 일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이 시대에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은 잠시 멈추어져 있지만, 교회가 휴거된 후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다시 그들을 다루시게 되면, 이방인들은 지금보다 더욱 확실하게 연합할 것이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을 대적할 적그리스도의 왕국이 일어나 자기들의 역사를 종결지을 것이다.
3. 교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과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독특한 족속이다. 교회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나타나며,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까지 지상에 있게 되는데, 이 기간 중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한 방법,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고,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유대인으로도, 이방인으로도 불리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교회로 불린다. 교회 또한 한 “민족”으로 불리는데, 그렇다고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것도 아니다. 교회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백성”(신 14:2, 벧전2:9)이라고 불리고, “거룩한 민족”(출 19:6, 벧전 2:9)이라고 불리지만, 이스라엘이 육신적인 민족인 반면, 교회는 영적인 민족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복 중 영적인 부분에 속한 일부를 취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구약에 이스라엘에게 예언된 모든 복들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 특별히 땅과 왕국에 관련해서는 교회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을 것이 전혀 없다. 교회가 이스라엘 대신 받은 것은 오직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뿐이다(마 21:43).
교회가 영적인 민족이라는 것은 또한 세상 가운데 미움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육신적인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이 세상 왕국들에게 대적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민족으로서의 교회는 이 세상 제도, 즉 영적으로 흑암의 세력 아래 있는 세상에게 박해를 받는다. 사탄은 두 가지 면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물리적인 측면으로, 이방 왕국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신정통치 왕국을 대적하는 것이요(이것은 “천국”이라는 관점으로 제시된다.), 또 다른 면은 영적인 측면으로, 세상 제도를 일으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미혹하고 박해하여 배교하도록 만들며 무너뜨리는 것이다(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으로 제시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 유기체이다. 그래서 진주로도 비유되는데, 이는 진주가 보석 중에서 유일하게 유기물로 되어 있는 보석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지금은 단지 신랑을 기다리는 정혼한 처녀이지만, 신랑이 오시면 완전한 아내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순결한 상태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가 되어야 하며, 세상에게 눈을 돌리는 간음하는 여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과 연합한 교회는 음탕한 교회라 불릴 수 있다. 대표적인 교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인데, 그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 불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성경은 그 교회를 “창녀들의 어미”라 부르고 있다(계 17:5).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카톨릭 교회와 연합한 교회는 창녀와 합한 교회가 된다.
또한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몸인 참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지역 교회”를 구성하게 된다. 비록 눈에 보이는 교회인 지역 교회 안에 쭉정이들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모습이 아니며, 교회는 그러한 자연인들을 빨리 구령해서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구원받지 않은 쭉정이들이 지역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는데 방치해 둔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양무리”가 아니라 개, 돼지, 이리, 뱀 등이 모여있는 “동물원”이 되고 말 것이다.
신약성경, 특히 바울 서신들은 모두 이 “교회”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되었다. 거기에는 구원에 대한 교리부터 시작해서, 성도들의 행실과 섬김과 헌신, 그리고 삶의 자세와 신랑을 기다리는 모습 및 교회가 받게 될 영광을 포함해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교회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탄생된 것이기에(행 20:28), 십자가 이후에야 자세히 계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이나 신약의 다른 책들은 교회가 중심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바울 서신 외의 다른 책들에서 교회의 교리를 찾으려다 보니 그렇게들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 관한 부분들과 유대인에 대한 부분들, 또한 이방인에 대한 성경의 각 부분들을 제대로 나누어 보지 않으면, 성경 해석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도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과 제사의 규례들을 교회 생활에 적용하려다 보니 율법적인 제약 가운데 자유함 없는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요, 환란 때의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려다 보니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든지, 구원을 잃어버린다든지,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든지 하면서 불안한 생활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의 시대를 나누는 것과 더불어, 이 세 대상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나누면서,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확실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공부할 때 우리는 각각의 시대와 대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들이 거대한 하모니를 이루어 우리 눈앞에 웅장하게 펼쳐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