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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대한민국의 진짜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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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1월호>
필자가 보는 윤석열 현 대통령은 자유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대통령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유”가 삭제된 언어를 사용한 반면, 윤 대통령은 자유를 강도 높게 강조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것도 이나라의 자유를 지키려는 목적이 매우 컸다.자유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가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제거한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학생들의 교과서에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만을 표기했다. 그러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결코 없어져서는 안 될 표현이다. 헌법상의 “자유”는 “반공”과 북한의 6.25 “남침”을 확인해 주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남한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문재인 정부 교과서에서는 “남침이란 말마저도 사라졌다.우리 선열들이 그처럼 피 흘려 지켜 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면 그 앞에 어떤 수식어든 붙을 수 있다. 일례로 자유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도 자신들을 가리켜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공포와 처형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전 정권에서의 “자유” 삭제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었다. 북한과 정치적 성향이 같은“민주주의”가 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자유 제거 세력과 어떤 타협도 없다.”라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명했다.
사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성경에 없는 개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북한의 “사람중심” 주체사상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민주주의에는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경외심도 없다. 다만 사람이 국가 운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상일 뿐이다. 그들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롬 13:1) 알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마귀가 자신에게 넘겨진(눅 4:6) 현 세상을 운영하는 정치 체제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다른 민주주의와 달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섬기는 데매우 유용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대한민국에는 교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이 땅에 허락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인데, 그런 그들이 정치 체제상 보장되는 자유와 그리스도인의 영적 자유를 구분하고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필자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자유로운 국가에서 신앙적 “방종”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종은 자유가 아니다. 방종은 하나님을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섬기는 것을 뜻한다. 한국 교회는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로 하나님을 헛되이 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현 세상과도 타협해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 세상의 신인 마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서 그것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는데, 그러한 가증스러운 모습은 멸망 전의 이스라엘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되었다.『내가 또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들 위에 내 손을 뻗치리라. 내가 이 곳으로부터 바알의 남은 자와 크마림의 이름을 그 제사장들과 더불어 끊어 버리리니, 지붕들 위에서 하늘의 군상을 경배하는 자들과, 주로도 맹세하고 말캄으로도 맹세하며 경배하는 자들과, 주로부터 돌이키는 자들과, 주를 찾지도 아니하고, 그에게 구하지도 아니하는 자들이라』(슾 1:4-6).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말캄에게 동시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대한민국의 교회들은 이 땅에 허락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 체제상으로 보장된 자유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리는 영적 자유를 구분하지 못한다.그들이 만끽하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의 신앙적 방종이다. 방종은 결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성경과 무관하게 제멋대로 섬기는 영적 간음과 일탈에 불과할 뿐이다.
맹세하며 경배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두 마음을 품은 민족에게 죽음을 선고하셨다.교회에 나무 십자가를 세워 놓고 변개된 개역성경을 펼쳐든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는 척하면서 성경대로 행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세상을 의식해서 그것을 우상시하고 타협하는 죄를 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짜 교회들의 죄를 절대로 간과하지 않으신다. 그곳의 거듭나지 않은 무리들은 그들이 『주여, 주여』(마 7:21)라고 통성 기도했을지라도 모두 다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그런 교회들에 발을 들여놓고 세상에 취한 “데마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 5:10)에서 준엄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2:15,16). 과거에 필자가 다녔던 장로교회에서는 청년들이 “자유”라는 말을 남발했다. 모임을 가질 때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이야기하며 자신들에게는 무엇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기타를 연주하고 드럼을 치며 세상 음악을 흉내 낸 CCM을 불렀다. 심지어 춤까지 추었다. 자신이 자유롭기에 그 무엇을 하든 정결하다는 것인데 참으로 그러한 것일까? 『정결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결하나 더럽혀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정결한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다 더럽혀져 있느니라』(딛 1:15). 자신이 죄에서 정결케되었기에 모든 것이 정결하게 여겨져서 그 무엇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대답해 보라. 당신에게는 담배와 술,도박과 포르노, 배설물, 토사물, 음식물 쓰레기 속의 구더기와 파리가 정결한가? 당신은 그것들을 피우고 마시고 중독되고 만지고 뒹굴며 놀아도 전혀 더럽지 않단 말인가? 마귀가 지배하는 현 세상을 즐기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발하는 자들이 영락없이 그와 같다. 그들은 자유를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즐기는 데만 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마음과 양심이 정결하게 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 반응하지 않고 거룩한 것들에만 반응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죄에게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기 때문이다(롬 6:11). 하나님과 세상 중에 택해야 할 때 기꺼이 하나님을 택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약 1:8).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이 되시지 못한다면 그분께서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시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전체(全體)가 안 되시면 나의 전무(全無)가 되실 뿐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주님과 세상을 동시에 둘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은 주님이시다!(고전 1:31) 그러한 주님께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은 “죄”로부터의 자유였다. 『그때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시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니라. 종은 집에서 영원히 거하지 못하나 아들은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요8:31,32,34-36). 당신은 이 말씀을 진지하게 읽었는가? 읽었다면 무엇을 깨달았는가? 하나님의 아들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의 종 된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오셨다! 『만일 아들이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이다. 죄의 세상을 마음껏 누릴 자유를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니면 세상을 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마음과 양심이 정결케 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것들에만 반응한다. 우리는마음속에 예수님과 더러운 세상을 동시에 둘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세상이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1:31). 그러한 주님께서 알려 주신 진정한 자유는 바로 “죄”로부터의 자유였다. 성별되어 거룩한 것들을 추구할 자유를 주려고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의 혼이 몸에서 베어짐으로써 시작되었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 2:11). 아담의 타락으로 그의 혼이 몸에 붙어 버리자 아담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혼이 몸에 붙은 채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로써 혼은 죄의 몸이 요구하는대로 죄를 짓다가 지옥에 던져질 운명해 놓였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죄의 굴레에 속박되어 죄의 도구가 된 인간의 몸은 죄로 저주받은 세상의 온갖 자극에 반응하는 불의의 병기로 변질되었다. 세상에 난무하는 죄들을 보라. 혼이 몸에 붙어 버린 죄인들이 그 몸으로 저지르는 죄들이 아닌가? 이처럼 죄의 종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죄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업적은 몸의 속박으로부터 그들의 혼을 분리시키시는 일이다. 즉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셔서 그의 혼을 죄의 몸에서 분리시키신다. 그러면 혼이 더 이상 죄의 법이 역사하는 육신의 요구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갖게 된다. 혼이 육신의 법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함으로써(롬 7:2,3) 자신과 한 몸 된 새 남편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나의 형제들아, 이런 연유로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율법에는 죽었나니 이는 너희로 다른 사람, 즉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그와 혼인하게 하려는 것이요,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께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니라』(롬 7:4). 그런데 이 놀라운 자유를 떠나서 다시 율법의 속박 아래로 들어가 종의 멍에를 메게 하려는 자들이 누구인가? 구원을 받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거나, 구원을 유지하려면 율법을 행해야 한다고 강단에서 떠들어대는 자들이다. 자기 자신도 구원받지 않았으면서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인가?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 폐기되었다!(엡 2: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 자유 안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율법으로 의롭게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 너희가 잘 달려가고 있더니 누가 너희를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막더냐?』(갈 5:1,4,7) 갈라디아 교회들은 잘 달려가기라도 했지만, 사회 복음으로 시작된한국 교회는 아예 달려 본 적도 없다. 뒤집어진 풍뎅이처럼 제자리에서 버둥대는 그들을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막고 있는 자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일꾼들로 가장한 자칭 신학자들과 목사들이다. 그 소경들에게서 배운 신학생들과 교인들은 죄의 저주 아래 놓여 있음을 알라. 자유대한민국의 진짜 “자유인”은 성령님에 의해 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거룩한 것들을 추구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자유대한민국의 자유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켜주고 계신다! 영적자유의 거룩한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라. 그런 후에 바른 성경으로 진리를 실행한다면 당신도죄에서 자유롭게 된 진짜 자유인이 될 수가 있다. BB